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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대하는 자세

by 읽고쓰는스캇

카페에서 오랜만에 실수를 했다.

큰 실수는 아닌 거 같다. 근데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니 실수의 경중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손님의 몫이었다.


실수를 하게 된 약간의 핑계를 나열하자면,

손님이 많았고, 주문이 밀렸고, 전날 밤에 푹 잠들지 못했고 등등이다.

솔직히 핑계를 대자면, 더 나열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핵심은 이미 저질러진 실수였다.

그리고 핑계를 나열하는 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이쯤 되면 아마도 내가 무슨 실수를 했을지 궁금할 수도 있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에스프레소 투샷으로 드려야 하는데 실수로 원샷"으로 드렸다.

이 얘기를 듣고, '무슨 소리야?'라고 먼저 생각나면, 아마도 카페 일을 안 하시는 분이고,

'아~'로 시작되는 반응이면, 카페에서 일을 해보신 분이다.


이미 음료를 챙기셔서 나가신 분께 내 실수를 꼭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았다.

다행히 그 손님은 카페에 종종 오셨던 분이기에 적립을 하셨고, 휴대폰 번호도 저장되어 있었다.

부랴부랴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XXX커피입니다. 제가 실수로 투샷을 드려야 하는 음료에 원샷을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썼다. 근데 여기서 마무리하면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그 문장 사이에 한 줄을 더 넣었다.


'오늘 주문하신 음료만큼 적립금으로 넣어드릴게요'라는 문장을 추가했다.

그렇게 문자가 완성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혹시나 답장이 올까 봐 초조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보는데, 답장은 없었다. 내 진심 어린 사과의 문자를 읽기는 하셨을까?


오늘 있었던 일을 스레드에 소소한 에피소드로 남겼더니 내가 한 실수는 애교였다. 아메리카노에 에스프레소 샷을 안 넣어서 얼음물을 드렸다는 사장님도 계셨고, 바닐라 시럽 대신에 다른 시럽을 넣으셨다는 분도 계셨다. 내가 올린 글에 공감하시는 분도 계셨다. 아마도 카페 사장님들은 다 비슷한 실수를 하시나부다.


실수를 했을 때, 실수를 가장 빠르게 덮을 수 있는 건 실수를 인정하는 게 먼저, 그다음은 실수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장님들도 그렇게 할 거라 생각된다.


혼자 일하면서 오랜만에 실수를 했다. 실수에 너무 자책하지 말고, 다음번에는 좀 더 침착하게, 손님이 많고, 주문이 밀려도 침착해야겠다. 조급함이 보이지 않게, 바쁘지만 침착한 행동으로 실수를 줄여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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