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
오랜만에 서랍 속에 잠들었던 외장하드를 깨웠다.
아내가 외장하드가 하나 필요하다고 하길래, 서랍 속에 잠든 내 외장하드를 주기로 결정했다.
세 번째 서랍에 있던 나의 조그만 1TB 외장하드. 거의 6개월 정도는 안 썼길래 혹시 그 사이에 고장이 났을까 봐 걱정됐다. 컴퓨터에 외장하드를 연결하자 다행히 불이 들어오고, 문제없이 작동되었다.
오랜만에 외장 하드를 꺠웠으니 무슨 파일이 있는지 확인하던 중, 예전에 작업했던 영화들의 메이킹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카페를 열기 전, 난 영화 CG회사에서 일을 했다.
내가 참여한 대표 작품은 <남산의 부장들>, <마약왕> 그리고 <터널> 등등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영화 작업을 했던 건 송중기, 김태리 배우가 주연으로 나왔던 <승리호>였고, 회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작업헀던 건 중국 작품인데 제목은 기억이 안 난다.
퇴사 전에 메이킹 영상들을 챙겨서 나왔다. 나중에 회사 이직할 때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니 이것저것 챙겨서 나왔다. 물론 포트폴리오는 완성하지 못했다. 결혼 후에 카페를 운영하게 되면서 영상 쪼가리들만 외장하드에 남아있었다.
잠자던 외장하드에 잠들어있던 영상 파일들을 하나씩 깨웠다.
영상이 시작되자 옛날 영화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터널> 메이킹 영상을 보면서 같이 일했던 동기가 떠올랐다. 내 옆자리를 차지했던 동기는 <터널>을 작업하고 나서 퇴사했었다. 지금은 어디서 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리고 <터널>이 개봉되고, 다른 CG 회사 대표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내가 맡았던 장면이 실제 같다는 칭찬도 들었다.
<마약왕>을 하면서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영화 개봉 전까지 고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마약왕>에서 송강호가 살던 집은 같은 팀원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최악으로 남을 뻔했다.
내 모든 걸 다 쏟아부은 영화는 <남산의 부장들>이었다. 특히 부마항쟁 장면은 5년 차였던 내 모든 걸 쏟아부었던 장면이다. 물론 외주 회사에서 많은 부분을 도와줬지만, 처음으로 군중 작업도 했었고, 야간 씬이다 보니 조명도 많이 설치하면서 꽤나 고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메이킹 영상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 장면을 만들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그때 같이 일했던 팀원들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영화 회사에서 일했던 과거와 카페 사장인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다.
영화 회사에 다닐 때에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었고, 체력도 좋아서 야근도 자주 했고, 내 옆자리에서 같이 일하던 팀원이 좋았다. 카페 사장이 된 지금은 많이 다르다. 나이도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중이고, 체력은 조금 떨어졌고,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는 아직 없다. 1인 카페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열심히 홍보하고 일해야겠다. 가끔 혼자 일하는 게 외로울 때가 있고, 때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나 혼자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영화와 카페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시간 같다. 영화 같은 경우는 영화 개봉 전까지 시간이 많다. 길면 6개월 정도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 작업 후에 영화가 개봉되면 관객들의 평가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카페는 많이 다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만드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고, 손님 주문 후 1분이면 손님의 맛 평가를 들을 수 있다.
시간이 흘렀고, 그때의 모습은 지금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여하튼 갑자기 외장하드에서 내 젊었을 적, 내 모든 걸 하얗게 불태웠던 시절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같이 일했던 팀원들은 이제 어디서 뭘 할까? 야근이 많은 직업이었는데 지금은 좀 다를까? 어쩌면 지금도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할지도 모른다. CG 업계를 떠난 지 5년이 넘었으니까 지금은 야근이 좀 없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