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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발견한 내 손의 변화

손가락 마디가 굵어졌다고?

by 읽고쓰는스캇

어제 저녁, 잠들기 전 아내와 함께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었다.

요새 아내와 미생을 다시 보고 있는데, 30대가 되고 나니 미생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자영업자가 되고 나서, 장그래의 회사 생활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팀원으로서의 회사 생활이 조금은 낯설게만 보였다. 20대 때에는 장그래의 시선으로 많이 봤는데, 지금은 오상식 과장의 회사 생활이 더 눈에 들어왔다. 만약 내가 계속해서 회사 생활을 했으면, 난 어느 위치에서 일하고 있을까?

그렇게 미생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내 손을 유심히 바라봤다. 순간 내 손에 뭔가 묻어있는 줄 알았다. 내 손을 세심하게 살피던 아내가 무심코 말했다.


"오빠, 뭔가 손마디가 예전보다 굵어진 거 같아."


그러고는 연애할 때는 손가락이 가늘고 이뻤는데, 손가락 마디가 조금 굵어진 거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내 손을 봤는데 특별히 달라진 건 없어보였다. 매일 보던 손이라서 그런가.


디저트를 만들 때 내가 제일 신경쓰는 건 네 번째 손가락에 껴있는 결혼반지다. 물론 만들 때 니트릴 장갑을 끼긴 하지만, 혹시나 반지가 떨어졌을까봐 결혼 반지를 확인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사고는 없었다. 만약 디저트 반죽에, 음료에 결혼 반지가 들어가는 상상만해도 아찔하다. 잠들기 전, 아내와 소소한 대화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다시 손을 봤다. 아내 말대로 조금은 굵어진 듯 한 듯 했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꺾어 뚝뚝 소리를 너무 많이 내서 그런가? 아니면 손을 너무 많이 써서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모양이 변한건가? 내 생각은 아무래도 디저트를 계속해서 만들다보니 그에 맞춰서 변화된거 같기도 하다.


솔직히 손가락 변형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에 따라서 자연스레 변하는 거라 생각한다. 만약 내가 사무직에 취직하게 된다면, 손가락 마디는 얇아지고 다시금 예뻐지지 않을까?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나중에 나이 먹어서 손가락 때문에 고생하는 것만 아니면 된다. 예전에 디저트 카페를 처음 할 때, 손가락을 많이 써서 나중에 나이 들면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나름 신경써서 손을 관리하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이를 더 먹고 내 손에 문제가 없길 바라는 것 뿐이다. 나이들어서 손가락이 아프면, 그냥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할 예정이다. 그게 손 때문에 속상한 내 마음에 약이 되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면 다시 한 번 손을 봤다. 마디가 좀 굵은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은 손도 아니다.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있고,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감사하다.


아내가 내 손의 변화를 알아차린 것처럼, 우리는 모두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때론 그 변화가 무섭고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것 때한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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