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를 읽고
새해가 되면 마음먹은 대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나의 가방에는 매일 그날 분량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영어 회화책, 소설책, 에세이 그리고 메모를 할 수 있는 수첩까지. 업무에 치여서든 동료들과의 수다와 커피 한 잔의 여유에 밀려서든 며칠간 길게는 몇 주간 한 번도 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막상 틈이 생겨 책을 펼치려고 하면 보지도 않을 텐데 무겁게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는 마음에 집에 두고 온 욕심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은 넘치는데 주어진 물리적 시간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러다 내 마음을 대변하는 제목을 가진 책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을 만났다.
책을 읽는 동안 따뜻한 문체와 분위기에 작가는 참 착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책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할, 어린 딸의 부모로서의 역할, 남편으로서의 역할, 직장인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골고루 균형 있게 잘하고 싶은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터넷 서점원으로 일하는 작가는 이미 많이 알려진 작가의 책, 사회에서 요구하는 책보다는 아직까지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있고 개인적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이 더 많이 팔리는 책으로 변모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어 하지만 당장의 매출과 산업의 생태계의 벽에 번번이 부딪치고 만다. 여기서 작가는 주된 일에서 탁월함과 능숙함의 경지에 이름으로서 여유로워진 시간을 다른 것에 할애하라고 얘기하다. 그리고 일에 있어 능숙함에 이르는 방법은 '열심' 보다는 '계속'이라고.
내가 당장 이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음을 이해하면서, 결이 다른 방식의 일을 해나갈 능력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일을 잘한다는 것은 산업의 부품으로 작동하는 사이에도 내가 팔고 싶은 좋은 책에 관심을 쏟을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그러려면 산업이 요구하는 일에도 능숙해야 한다.
능숙함에 이르는 길은 '열심'보다는 '계속'이다. 열심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여러 사례를 겪어봐야 하고 비슷한 사례를 여러 번 경험하기도 해야 한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성과가 이따금 나올 수는 있지만, 시간을 들이지 않고 능숙해질 순 없다. 능숙해지면 비로소, 내가 일하는 시간 속에 내가 사랑하는 책에 열심을 쏟을 시간도 생기기 시작한다. 계속해야 열심도 가능해진다.
_김성광,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계속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다. 계속하다 보면(언제나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는 않더라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고 믿고 싶다).
_제현주, <일하는 마음>
장기하의 노래 <그건 니 생각이고>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처음에는 지지부진하더라도 매일 운동장을 뛰었던 것이 언젠가 마라톤을 뛸 수 있는 체력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