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딱 그 나이였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누가 물으면, 사실 딱히 꼬집어 말할 만한 거창한 사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가, 아침에 눈 떠서 꾸역꾸역 출근하고 , 남들 하는 만큼 일하고, 퇴근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버텼다고 생각했다.
근데 희한하게도 퇴근길 버스에 앉으면, 혹은 텅 빈 집 현관문을 열 때마다 느껴지는 싸한 기분이 싫었다.
'하루도 겨우 버텼구나 싶은 안도감 뒤에 밀려오는 거대한 상실감. 뭘 위해서 이렇게 악착같이 살고 있나 싶은 회의감. 그리고 자꾸만 떠오르는 지난 실패'
어릴 때부터 꿈꿨던 내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느새 나이는 서른이 훌쩍 넘었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같았다.
조금만 실수해도 세상 무너지는 것 같았대. 남들 다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는 기분에 불안했다.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럴 때마다 나를 기다리는 건 차가운 맥주 캔이나 쓴 소소주잔뿐. 딱 한 잔만, 오늘 하루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 생각하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잔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술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졌다.
술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 줬지만, 결국 다음 날 더 큰 무기력과 절망감으로 돌아왔다. 몸은 망가지고, 마음은 피폐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나 자신을 혐오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그림자처럼 어둡고 초점 없는 눈빛.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압박감에 번아웃은 극에 달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깊은 수렁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 나약했던 내 모습,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던 날들.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한심하고 불쌍했다. 하지만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답을 찾고 싶었다. 그때 우연히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권, 또 한 권... 책 속 세상은 내가 갇혀 있던 좁은 방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것 같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생각지도 못한 지식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서없이 내 감정을 쏟아내는 일기 같은 글이었다. 술에 취해 엉망진창이었던 밤들, 후회스러운 순간들,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다짐들을 적어 내려갔다.
신기하게도 글을 쓸 때마다 내 마음속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같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 억누르기만 했던 것들이 글자 하나하나를 통해 밖으로 나오면서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줬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했다. 왜 내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무엇이 나를 괴롭혔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었다. 과거의 상처들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그리고 놓아주는 연습을 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한 건 아니다. 넘어지고 비틀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책과 글쓰기는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줬다.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작은 등불 같은 존재랄까.
이제 와 돌아보면, 서른 즈음의 방황은 어쩌면 내 삶에 꼭 필요했던 과정이었을지도 모를 일.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마주했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니까. 술에 의존했던 나약한 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개척하려는 단단한 나로 다시 태어난 것.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에 묶여 살고 싶지 않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애써 외면하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붙잡혀 있지도 않을 테다!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그 그림자 진 마음에 따뜻한 햇살을 쬐어주려 한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은 분명 그 어떤 시간보다 눈부실 거라고 믿으며.
이 책은 나처럼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은 손길이다. 당신도 혼자가 아니라고, 당신 안에도 다시 일어설 힘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햇살 한 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제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