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30대는, 돌아보면 한 줄의 문장보다는 어딘가 어둡고 긴 그림자에 가까웠다. 햇살이 쨍한 날에도, 가로등 불빛 아래서도 늘 내 발밑을 따라다니던 그 그림자처럼 말이다. 분명 열심히 살았다. 아니, 어쩌면 악착같이 버텨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려 애썼고, 내 안의 불안을 감추려 발버둥 쳤다. 남들처럼 성공하고 싶었고, 행복해 보이고 싶었다. 그게 30대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잔혹했다.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순간, 억지로 지탱하던 정신력이 무너졌다. 하루 종일 가면을 쓰고 연기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알코올 중독과 우울, 공황으로 얼룩진 진짜 내가 드러났다. 끝없이 밀려오는 번아웃은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태워버렸고,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은 나를 좀먹어 들어갔다. 작은 실패에도 크게 좌절했고, 그럴 때마다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워졌다.
특히 술은 나의 가장 가까운, 그러나 가장 위험한 친구였다. 처음에는 그저 스트레스 해소나 잠시의 위안을 얻기 위해 마셨다. 딱 한 잔만, 오늘 하루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선물이 어느새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술 없이는 잠들 수 없었고, 술 없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술은 나의 감정을 무디게 만들었고, 현실의 고통에서 도망치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 같았다. 하지만 깨어나면 더 지독한 숙취와 함께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술은 나의 그림자에 비료를 주는 것 같았다. 마시면 마실수록 그림자는 거대해졌고, 나는 그 안에 갇혀버렸다.
[내 삶은 엉망진창이었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그리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계속해서 패배하는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무엇을 위해 버티고 있는 걸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핏기 없는 얼굴, 생기 없는 눈동자, 그리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표정. 이게 정말 서른 문턱을 넘어서 치열하게 살아온 한 남자의 모습일까. 수치심과 절망감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그림자 속에서 헤매던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건 다름 아닌 '글자'들이었다. 우연히 도서관에 발을 들였고, 아무 책이나 되는대로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책 속에는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나의 그림자를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책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네가 겪는 고통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그러니 부끄러워하거나 숨지 말라고.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글자들이 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리고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그림자, 그 속에서 겪었던 번아웃과 상실감, 실패와 좌절,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끔찍한 터널. 이 모든 것을 글로 써내고 싶었다. 내 안의 먹먹함을 토해내고 싶었다.
처음 글을 쓰는 건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하얗게 비어있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막막했고, 어떤 단어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한 글자씩 써 내려갈 때마다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얼굴이 일그러졌고, 숨이 가빠졌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아픔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글로 옮겨 적는 순간, 그 감정들은 더 이상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그저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 되었다. 종이 위에 새겨진 글자들은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글 속에서 나의 30대를 다시 살았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에게 치유의 과정이었다. 내 안의 어둠을 밖으로 꺼내어 햇살 아래 말리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두서없고 부끄러운 글들이었지만, 꾸준히 쓰다 보니 조금씩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30대의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대던 내가 어떻게 한 줄기 빛을 찾아 헤매었고, 그 빛이 독서와 글쓰기였으며,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다시 세상으로 나올 용기를 얻게 되었는지. 나의 이야기는 더 이상 숨기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당당하게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역사가 되어갔다.
이제 나는,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거창한 성공담이나 화려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한 남자가 30대에 겪었던 지독한 번아웃과 상실감, 실패,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그림자와 어떻게 싸웠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그 그림자를 딛고 일어서려 하는지에 대한 아주 솔직한 고백이다. 이 책이 어딘가에서 나처럼 그림자 속에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닿아, '당신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도 다시 햇살 아래 설 수 있다고, 그림자는 언제든 걷어낼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여전히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끔 불쑥 찾아와 나를 흔들려 할 때도 있고, 과거의 어둠이 순간순간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두려움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만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앞으로 나아가 밝은 햇살 아래 서 있기로 선택한다면, 그림자는 언제나 내 발밑에 드리워질 뿐, 나를 집어삼키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에 나를 묶어두지 않으려 한다. 아프고 힘들었던 30대는 분명 나의 일부이지만, 그게 나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제는 그 그림자 진 마음에 따스한 햇살을 쬐어줄 차례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얻은 단단한 마음과 작은 희망으로, 나는 나의 40대를,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날들을 밝고 따뜻한 햇살로 채워나갈 것이다. 평범했었던 30대의 그림자는 이제 과거에 남겨두고, 나는 새로운 빛을 향해 걸어 나갈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나의 글이, 그 길에 작은 등불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