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다시 배우다

51회사원의 슬픔과 희망 사이

by 회색달

마흔 언저리, 기업의 인사팀이라는 곳에서 나는 매일매일 쏟아지는 업무의 쓰나미 속에서 허우적댔다. 해야 할 일 목록은 끝이 없었다. 하루가 저물어 사무실의 불이 꺼질 때쯤이면 늘 미처 해결하지 못한 잔여 서류를 보며 한숨 푹푹 쉬는 게 일상이었다. 그걸 반복하다 보면 평일 5일이 훅 가버렸다.

마치 쳇바퀴 도는 햄스터처럼 열심히 달리고는 있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몰랐다.


예전엔 나름 잘 나갔다. 늘 앞장서 일했으니 인정받고, 남들보다 빠른 승진에 부끄럽지 않은 '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럴수록 무작정 달렸다. 남들보다 먼저, 남들보다 빠르게.


하지만 나이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세상은 진짜 미친 속도로 변했다. 나보다 일 잘하는 젊은 후배들은 계속 늘어났다. 예전엔 척척 해내던 일도 이젠 버벅대고, 실수는 자꾸만 늘었다. 저번주에는 공문서에 붙임파일을 보내지 않은 채 거래처에 발송했다가 전화까지 받은 적 있다. 얼굴이 뜨거웠다. '아, 이거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매일 지워도 다시 쌓이는 업무 리스트를 보면서 생각했다. '예전처럼 무작정 달려들어 단편적으로 처리하려고만 하면 진짜 끝없는 길을 영원히 달리기만 할지 몰라.'

숨 막히는 압박감, 매일 반복되는 야근, 그 와중에 계속되는 실수들. 자존심은 상하고, 괴로웠다. '내가 이렇게밖에 안 되나?' 싶은 생각에 스스로를 갉아먹는 날들이 업무 성과보다 더 많이 쌓여갔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그냥 '나이만 먹은 능력 없는 아저씨'가 되겠다 싶었다.

'그래, 다시 배우자. 이 빌어먹을 힘든 과정도 결국엔 성장의 시간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유튜브든 책이든 그들만의 '꿀팁'이나 깨달음을 얻으려고 애썼다.


무작정 해야 할 일 리스트만 늘려가던 방식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이젠 하나를 하더라도 정확하고 꼼꼼하게 끝내는 것에 집중했다.

자연스럽게 실수가 줄었다. 비슷한 업무들은 통합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창의성까지 발휘됐다.

지금껏 시키는 일만 하던 기계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이걸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고, 어떤 방법으로 이 일을 해결할지 미리 대책을 수립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무턱대고 시작하는 것보다 잠깐 멈춰서 생각하는 게 훨씬 빠르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거다.


배우려는 자세, 이게 진짜 중요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자책하고, 누가 뭐라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지금은 이젠 '아, 이건 왜 이랬을까? 그럼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질문부터 던진다. 문제 상황 앞에서 후회나 자책 대신 대책을 먼저 고민하는 내가 되어가는 걸 스스로 느끼면서, '아, 이게 진짜 성장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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