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오늘이라는 삶은 처음이라 그래. 방황이 내게 남긴 흔적들
인천 종합어시장.
그날 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생선 비린내, 호객하는 아저씨들 목소리가 뒤섞인 곳.
나는 그냥 걷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걷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벅차던 시기였다.
어디서든 말수가 줄었고,
눈치만 빠르게 늘었다.
괜히 조심스럽고,
괜히 미움받을까봐 움츠러들었다.
잘해보려는 시도들이 하나둘 무너질 때,
내 마음도 같이 무너졌던 시절.
그때,
한 해산물 좌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빨간 다라이 안에 게들이 들끓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녀석들이
앞발을 치켜들고 꿈틀거리더니
그중 하나가 다라이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느리고, 힘겨워 보였지만
그래도 조금씩 벽 위로 몸을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그런데 갑자기,
밑에 있던 다른 게가
앞발을 뻗어 올라가는 게의 다리를 낚아챘다.
툭.
그대로 다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시 뒤,
또 다른 게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똑같이,
밑에서 누가 끌어당겼다.
그다음 게도 마찬가지.
한 놈이 올라가면
다른 놈이 다리를 잡아당긴다.
그 누구도 다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뚜껑이 필요 없어요.”
가게 아주머니가 말했다.
“다 끌어내려서, 결국 못 나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좀 조용해졌다.
사람 사는 모습 같았으니까.
나도 그런 곳에 있었던 것 같아서.
누가 나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걸 보면
괜히 위축되고,
괜히 마음 한구석이 아프고.
누가 나를 응원해주지 않으면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괜히 틀린 것처럼 느껴지고.
어느 순간 나는
나를 끌어내리는 말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뭐 대단하다고.”
“넌 아직 멀었어.”
“그냥 하지 마.”
그런 말들이 너무 많아서
나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그 다라이 속 게들을 보며
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끌어올리는 것보다 끌어내리는 게 훨씬 쉽다는 사실.
그리고 대부분은 끌어올리지 않는다는 사실.
세상에는
자기 몫만큼만 올라서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 더 나아가려 하면
본능처럼 당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못 올라가면
누구도 못 올라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를 끌어올릴 힘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응원하지 않아도,
박수쳐주지 않아도,
의심받고, 조롱받고, 외면당해도
나는 나를 믿고 올라가야 한다.
끌려 내려오더라도
다시 벽을 딛고,
다시 기어오르고,
그러다 보면 결국
누군가는 나를 닮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끌어내리는 손이 아니라
끌어주는 손이 되고 싶다.
그 생각이 들자
조금 덜 외로워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올라서 있는 사람이 되기로.
다라이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아무도 끌어주지 않아도,
나 혼자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