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인간의 창작은 뇌과학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낸다고 믿지만, 사실 뇌는 이미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다시 엮어낼 뿐이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건 작품만이 아니다. 삶의 선택 역시 늘 지금 가진 것들 안에서 더듬거리며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딱 맞는 직업과 꿈을 단번에 찾으려 한다면,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19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 역시 처음부터 성공한 작가는 아니었다. 그는 오랜 시간 소설에서 외면받았고, 글을 쓰는 족족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끝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작품을 집필했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통찰에 이르렀다.
“인생은 너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다.”
소설은 공상과학이 될 수도 있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재해석한 결과일 수도 있다. 완벽한 허구를 만들어내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애초에 ‘무(無)’에서 시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통째로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걷고, 느끼고, 생각해 온 시간에서 아주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조지 버나드 쇼는 임종 즈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한 번도 되어보지 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늘 노트북의 흰 여백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 볼 것인가.
PS. 개인 저서의 퇴고를 마쳤는데도 선뜻 출판사에 투고하기는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도 내면의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무언가는 계속 꺼내어 보고 싶고.
방법을 찾아보니 공저와 브런치스토리 연재, 서평을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과거의 나는 작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단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나도 덤덤히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생각보다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죠.
무언가를 배울 땐 어렵게, 남들보다 몇 배는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흉내 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얼마 못 간다는 것. 싫증을 자주 느껴 또 다른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기를 수 차례.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하는지는 아직도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분명해져 갑니다.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니, 과거 후회라는 이불은 집어던지고, 내일의 막연함은 손으로 휘휘 지우며 오늘, 지금에 충실할 줄 안다는 것.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단단해지고 있고, 오늘이 디딤돌이 되어 또 내일을 밝힌다는 것도.
조지버나드 쇼의 말처럼, 내가 가진 하루의 시간으로 나는 내일의 막연함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