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달리 Apr 03. 2024

29.뜨거운 겨울, 그리고 지금.


19년도의 겨울. 서울행 버스를 탔다. 가슴이 두근댔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책 쓰기 강의에 참석하기 위해 6개월 동안의  준비를 끝마친 날이었다.  


집에서부터 서울 강의실까지는 왕복 여섯 시간이 넘는 거리. 매주 토요일 두 달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처음엔 망설였다. 무엇보다 수업료가 생각보다 비쌌다. 자그마치 200만 원.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몇 달 동안 돈을 모았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강의에 참석한다니까 주변에서는 성화다. '그 돈과 시간을 들일 만한 일'이냐며 한 마디씩 했다. 그런데도 이걸 꼭 해보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수업을 주관하는 작가님의 손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탄생했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간 탓이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상관없었다. 하고 싶은 건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야 하는 성격이라 이번에도 직접 부딪혀 보기로 했고, 그 도전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나이 든 어른이나 글을 쓰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책을 쓰고. 특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나 글을 쓰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 돈을 벌고. 나중에는 어디 산처럼 조용한 곳에 들어가 책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이 짧았다는 건 첫날부터 깨달을 수 있었다. 글 쓰기, 책 쓰는 일은 나이, 장소, 성별이 상관없다는 걸.


지하철에서 내려 안내된 강의장까지 걸었다. 핸드폰으로 안내된 주소는 도심  한 건물을 향했다. 20여분 쯤 걸었을까, 회색 건물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30여 명이 보였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대학 생쯤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그것도 남자대학생. 그다음 옆으로 새치가 듬성듬성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까지.


자기소개 시간에 안 사실인데, 이들의 직업 역시  다양했다는 점이다. 선생님부터 의사, 사업가, 화물차 운전기사 등 등.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사가 끝날 때마다  작가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글쓰기를 하는 순간 작가의 삶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는 이미 웹 소설을 연재 중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들으며  빨리 더 글쓰기를 배워 책을 쓰고 싶었다.


그때부터 글 쓰기의 매력에 빠졌다. 겨우 글 쓰기 강의를 듣는 학생이지만, 오프라인 수업과 더불어 온라인 모임, 매주 진행되는 과제에 최선을 다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인상 깊은 일은 무엇이었는가?', '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 내가 싫어하는 것은?'.....


매번 스스로를 돌아보는 질문의 연속에서 나와 강의를 같은 날 시작한 예비 작가 동기들의 꿈은 점점 확고해지고 커져갔다.

직장일로 수업에 참석하지 못했을 땐 동기 작가들이 힘이 됐다. 일대일 대화창을 이용해 당시 수업 내용을 요약한 메모를 공유받기도 했고 누구는 직접 전화통화까지 해가며 도움을 줬다.


'작가' 이름만 들어도 설레었다. 지금 이 기록을 남기면서도 몇 년 전 그때의 겨울이 마치 어제와 같은 기분.


글 쓰기 초보를 시작으로 초고 완결작가, 전자책 출간 작가, 공모전 입선을 거쳐 지금의 브런치스토리 연재 작가가 되기까지 5년이 걸렸으며, 그 긴 시간은 약해진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100 페이에 달하는 초고를 완성하기 위해 밤늦은 시간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던 시절과,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진도에 막혀 '자괴감'에 빠져 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했던 말은 한마디.

'지금 까지는 이미 만들어진 길을 걸어오느라 삶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던 것뿐이다. 순수 나만의 의지로 걷는다는 건 힘들지만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이었다.


이른 새벽, 아침 일기를 작성하며 하루를 다짐하던 때가 생각난다. 유독 남들의 눈치를 보며, 인정받고 싶어 했던 나였기에 매일, 매 순간 스스로를 챗찍질 했다. 글을 쓰며 약하고 실수투성이인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됐다.

그렇게 글쓰기와 삶 자체가 즐거워졌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할 땐 벅찬 감동을 느끼며 성장 중이다.


브런치스토리에 한 편의 글을 남길 때마다 또 다른 삶을 사는 기분에 기쁨과 설렘이 가득한 날도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서른의 일기가 끝난다. 어느 때보다 큰 열정으로 살아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글 쓰기는 앞으로도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될 것이다. 매일 아침, 밤으로 기록하는 글이 많아질수록 삼십 대의 나를 더 선명하게 기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한 꿈만 꾸며 허공에 기억을 남겼던 나와, 하루를 치열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나. 모든 순간의 나를 있게 해 준 그때의 겨울 책 쓰기 수업.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해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앞으로 얼마나 내가 오래도록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삶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 낀 지 행복한 글을 쓰며 살고 싶다.


매일 수필 쓰기를 진행중입니다. 목표는 마흔이 되기까지 인데, 아직도 쓸 글이 책상에 잔뜩 쌓여 있네요.


과거에 끄적임으로 남겨 두었던 기억의 흔적을 모아 오늘의 일기로 남기는 과정이 힘들고 의미없어 보일수도 있겠지만


다시는 사람관계, 돈, 건강 등 등 에의해 내가 흔들리지 않고 무조건 행복하기 위해 삶을 돌아보는 숭고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8개월. 잘, 해낼 수 있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이이제이(以夷制夷)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