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땐 무슨 말인가 싶었다.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니?'.
요즘은 오히려 내면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걸 때가 많다. 바로 걷기에 빠져 있을 때다. 퇴근 후 집 근처 공원을 걸을 때, 주말 저녁 시간을 이용해 강변을 걸을 때에도 머릿속에 남아있던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라 해결책을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의 꼬리를 쫓기도 하는데, 정작 이렇다 할 해답은 찾지 못하더라도 대략 어디까지 뒤쫓았는지 스마트폰을 꺼내어 정리를 해둔다.
딱 걷는 동안만큼만.
걷는 동안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이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짙은 안갯속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도 계속 걷다 보면 조금씩 옅어지기 마련인 만큼, 마음을 활짝 열고 걷다 보면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세상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치 소중한 보물은 눈에 잘 띄지 않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동안 나는 제주도의 바다 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서귀포 시의 작은 항구의 길이 좋았다. 지역명을 따 '법환포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주말에도 마을 사람만 있고 외지인을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라 일 년에 봄과 가을, 두 번씩 두 해 동안 다녀왔다.
마을 입구에는 내가 누워도 될 만큼 넓은 평상이 하나 놓여있고 바로 옆으로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적당히 해도 가리고 바람이 불 때면 나뭇잎이 서로 부딪혀 또 다른 제주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잠시 앉아 쉴 때면 소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머리 위 지나는 바람 소리와 눈앞에 펼쳐진 바닷소리, 가끔씩 들리는 새소리며, 트랙터 소리까지. 그렇게 푹 빠져 있으면 마치 여행 중 또 다른 여행을 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마치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는 바람이 되어 섬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시간을 내어 걷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계속 눈앞의 놓인 삶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리기에 매진했으니,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뒤처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달리기보다는 낮은 속도로 걷다가도 근처 쉬어갈 벤치나 바위틈이 보이면 잠시 앉아 쉬는 걸 즐긴다. 그만큼 걷기를 통해 내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걷다 보면 생각지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철학가 중에서도 유독 걷기를 좋아했던 이들이 있었다는데, 평소 존경하는 소크라테스, 니체 모두 걸으며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걷기가 얼마나 유익한 움직임인지는 충분히 증명이 된 셈이다.
나 역시 걷는 동안 '나'에 대해서는 과학자가 되고 철학자가 된다. 그만큼 내 주변에서 해결되지 않고 맴도는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무엇이 가장 올바른 선택인가의 질문을 하니까. 역사 속 위대한 이들에게 비할 바 못되겠지만 어느새 걷기라는 건 삶에서 나와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