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에 취미가 생겼다. 시집을 몇 권 읽어본 경험이 전부지만 작가의 짧은 한숨마다 담겨있는 문장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 들이 보고 느끼는 바를 옆에 같이 앉아 있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마치 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한 줄 두 줄 썼다.
그러기를 한 해 반. 문맥도 맞춤법도 제대로 맞을 리 없는 나만의 문장을 모아 몇 편의 시로 만들었다.
어떤 건 혼자 읽기가 아쉬워서 SNS에 올려볼까도 하다가 그만뒀다. 괜히 누가 보기라도 하면 '손발 오그라든다'라고 할까 봐, 내가 쓴 글이라고 감히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한 번은 내 솜씨를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어디 공모전에라도 내면 어떨까 싶어 인터넷을 뒤적였다. 그러다가 찾아낸 공모전이 육군 3 사관학교에서 주관하는 '충성대문학상'이었다. 공모 자격 대상이 군인 뿐만 아니라 일반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가능했다. 분야는 수필, 시, 단편소설. 안내에 따라 내가 쓴 시 중에서 주제에 어울릴 법한 작품 중 열 편을 골라 우편으로 보냈다. '설마, 내가 되겠어?...'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공모전 접수 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 무렵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 스팸전화를 많이 받은 기억이 있어 여느 때처럼 받지 않고 수신을 껐다. 몇 초 뒤 다시 울리는 문자 수신음.
사실이었다. 내가 제출한 시 분야에서 많은 경쟁작품들과 겨루어 우수작으로 뽑힌 것이었다. 너무 기뻐 그 자리에서 소리 질렀다.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렸을 적 웅변대회를 나간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꼴찌를 했다. 30년도 더 된 기억이다. 말을 더듬거릴 정도로 떨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터. 그 이후 어디 대회라는 곳에는 한 번도 나간 적 없다가 성인이 되어 이런 상을 받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소와 계좌번호를 찍어 문자를 보냈다. 며칠 뒤 50만 원의 상금이 계좌에 찍혔다.
이 상금을 혼자 쓰기에는 아까웠다.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다. 기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상금은 입금된 지 하루 만에 사라졌다. 계좌에서 사라진 숫자 대신 마음에 여운이 오래 남았다. 상금도, 기부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를 읽으면서 깊은, 생각을 많이 했다. 괜히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더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위로 나를 위로해 준 건 시 속 화자였다. 그들은 조용히 내 곁에서 말을 들어주고 때로는 어깨를 토닥여줬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덕분에'라는 말이 있다. 풀어 보면 '덕을 나눈다'라는 의미다. 어떻게 보면 '덕분에' 얻은 행복, 행운, 기쁨을 혼자 간직하지 말고 곧바로 다른 곳으로 나누라는 말은 아닐까?. 내 생에 첫 상금을 받은 기쁨은 잠시였지만, 좋은 곳에 쓰이길 바라는 마음 덕분에 그때의 행복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