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주말까지만 하더라도 한낮 더위가 무서웠는데 오늘 출근길의 부는 바람이 차다. 뒤에서 갑자기 부는 바람에 얇은 외투 지퍼를 턱 밑까지 올렸다.
아침에 늦장 부리는 바람에 출근이 늦었다. 이 시간에 가면 분명 주차장이 만차라는 걸 알기에 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세워놓고 걸었다.
큰 도로를 기준으로 양옆에 세워진 가로수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중에 몇 그루는 아직 여름을 쥐고 있었다. 이웃은 이미 놓아버린 지 오래인데, 욕심이 많아서인지 여름과 가을을 다 쥐고 있는 꼴이다. 기껏 해봐야 몇 그루의 가로수다. 매일 갔던 길이었고 그걸 지키고 있는 아주 흔한 가로수.
아침부터 생각이 많았다. 직장 앞까지 심겨 있는 열 그루의 가로수를 지나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계절 탓을 했다. 흔히 여름에서 가을로 변한 이 맘때가 사람들 마음이 뒤숭숭 하다고 했던가. 누구는 과거 첫사랑을 그리워한다고 했다. 또 누구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되짚어 보는 계절이라고 했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나 직장, 인간관계 등 얕고 넓은 그것보다 깊은 생각에 빠지기 쉬울 때다.
이유가 있다. 이것도 계절 때문이다. 여름철 무더위를 피해 다니느라 자신과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고민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짧았고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지금은 이전과 달라졌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강추위 사이에서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를 독서로 채워 보기로 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 달전 K 작가를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그는 책을 출간하고 자신의 꿈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의 소식을 처음 본 건 지역 신문이었다
큰 울림이 생겼다. 신문을 덮자마자 알고 있는 모든 SNS를 뒤져 그를 찾았다. 메신저를 이용하여 연락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춘천에서 직장생활 하는 30대 청년입니다. 우연히 신문에서 작가님의 기사를 읽었는데요, 책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더는 방황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말씀에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직접 뵙고 싶습니다. 어떻게 방황을 이겨냈는지, 그리고 꿈을 찾는 비법을 배워보고 싶습니다.'
거짓말처럼 오 분 만에 연락이 왔다.
“얼마든지요! 저 시간 많습니다. 꼭 뵙고 말 나눠요!'”
“집에서 직접 운전해서 가면 한 시간 남짓 한 거리다. 용기를 내봤다. '혹시 오늘 저녁 여덟 시쯤 괜찮으십니까?”
꿈 같지만 꿈이 아니다. K 작가가 눈앞에 있다.
원주의 S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정장 차림에 나를 만났다. 무엇이 궁금한지 는 대충 느낌이 온단다. 다만, 자신을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주변에 벽을 짚고 걷기를 주문했다. 급하면 체한다는 말과 잊지 않았다.
책을 더 읽고, 지금처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갈 수 있다면 가고, 불가능하다면 메일이라도 보내라 했다. 그들의 생각을 배우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길. 그것만이 방황이라는 단어를 지울 수 있다고까지 했다.
"제가 꼭 읽어야 할 만한 책, 사람이 있을까요?"
"네. 수많은 분이 계시지만 딱 한 분을 소개해드리죠"
"누구죠?"
"빅터프랭클. 의사이자,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집필한 작가입니다."
" 네?. 죽음의 수용소요? 아…."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이해됩니다. 저도 그랬어요. 무슨 이런 제목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일까 싶었죠. 더군다나 수용소라니, 어색하죠?. 그렇지 않아도 제가 준비했습니다. 제 책과 이 책을 선물로 드리죠."
얼떨결에 선물로 책 두 권을 받았다. '독서는 스펙이다'와 '죽음의 수용소에서'.
"작가님 책이야 이미 구매해왔는데, 감사합니다."
"아뇨, 이 책은 제 친필이 담겼습니다. 지금처럼 저에게 찾아오신 그것처럼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할 때 제 책을 선물로 드리세요. 저는 모두에게 성장 씨앗을 나누고 싶습니다."
k 작가는 두 시간 넘도록 상담자 역할로 앞에 앉아 있었다. 시간은 손 쌀같이 지나갔고 다음 약속을 기약하며 짧은 만남을 끝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죽음의 수용소'를 펼쳤다. 300페이지가 안 된다. 가을바람 덕분인지 밤 열 시가 넘었는데도 피곤함이 없었다. 책상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첫 장을 펼쳤다. 이미 k 작가로부터 대충의 내용과 어디를 읽으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받은 뒤였다. 미리 적어놓은 페이지를 순서대로 읽었다.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비극 소설에 가깝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기로 유명한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수 백만 명의 포로가 겪었던 비인간적인 대우와 자행된 인권 유린의 이야기다. 그게 전부다. 그러나 핵심은 지옥과도 같은 환경에서도 꿋꿋히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간의 존엄성을 담고 있었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해야 했다. 매일,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120p-
'선택, 선택이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수필이었기에 내용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단번에 이해할 수준도 아니었다. 의문이 생겼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더군다나 살아서 나간 사람이 없다는 적군의 수용소에서 무슨 선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해답은 문장에 있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을 얻을 기회는 분명히 있다. (중략)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130p.-
수용소에 강제 갇힌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까? 처음에는 '곧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참한 현실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그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 등으로 묘사됐다.
그런 다음 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다양한 기회에 관해 얘기했다. 나는 내 동료(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가 가끔 한숨을 쉬던)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가 있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147p.-
악몽과도 같은 시간조차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정신과 의사로써 역할을 다한 박 터 박사의 이야기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면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보다 버리는 사람이 많다'라는 점이다. 문장에는 그의 사유가 녹아 있었다.
주어진 삶의 긴 시간 속에 항상 내가 원하는 결과만 나올 수는 없다. 시련과 실패를 겪고 나아가 죽음의 순간도 비켜나가도록 삶에 도전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삶이자,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성공' 이었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무작정 돈을 벌고 싶었다. 남들처럼 살고 싶었고,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다. 이 과정이 비교였다. 비교는 끝이 없다. 사람을 유혹하는 악마의 유혹이다. 그 속에 '나'라는 존재는 사라진다. 남과 비교하고 좌절하는 열등감 환자만 남는다. 그게 나였고,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곳저곳 좋아 보이는 곳에 기웃거리다가 넘어져 있었다. '힘들어. 여행도 귀찮고 이대로 쉬고 싶어' .
그동안 삶에 기대했다. 좋은 길을 보여주기를, 멋진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남들에게 보란 듯이 살도록 빠른 승진, 좋은 차, 많은 돈 등등. '나는 삶을 위해 무엇을 했었지…?' 이기적이었다. 나만 알았고, 내 삶, 내 동료, 가족, 직장 모두에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움직이기로 했다.
싸우기로 했다. 힘들다고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내 삶, 원하지 않고 스스로 얻기로 했다. 그것이 삶이라는 걸 빅터 프랭클이 가르쳐줬다. 저녁 퇴근길에 아침에 봤던 가로수를 다시 만났다. 드디어 욕심을 버렸나 보다. 여름이 안 보였다. 대신 그 위로 붉은빛 모자를 쓰고 있었다. 오늘로써 내 방황이 끝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