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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Sep 01. 2024

함께의 힘

열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읽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며 살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며 밤을 새워 보낸 날이 6년, 그 이후로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집 근처 도서관에 간다.


술집에서 정신병원, 서점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센터로, 다시 글쓰기 수업장과 도서관으로 옮겨간 나의 시간 동안 함께한 책은 곧 나의 삶이 되었다. 그동안 듣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며 배운 점은 하나, 결국 모든 핵심은 ‘책으로 시작되어 책으로 끝난다.’였다.


 ‘삼인행, 필 유아 사안’이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중에는 나의 스승이 있다는 의미다. 직장에서, 혹은 집안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중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자면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폭언과 욕설, 비난과 질투를 많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낸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물이 든다고도 했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의 뒤통수를 때리는 책이 많다. 그중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미움받을 용기》,《데미안》은 아직도 책 제목과 저자, 주요 줄거리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생각날 정도다.


첫 번째 책에서는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고, 두 번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의 대답은 ‘늘 나를 가로막고 있는 알을 깨뜨리려 노력하라’는 데미안 속의 압락시스를 만나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왜 자꾸만 흔들리는가?’의 대답은 기시미 이치로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오는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행복에 속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책을 만나기 전의 삶은 끔찍했다. 나라는 존재는 늘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나를 챙길 줄 몰랐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타인의 시선에 나를 포장하느라 힘들었다.


당연히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힘은 떨어지겠고, 처음 다짐했던 의지와 계획, 꿈은 점차 현실과 멀어졌다. 그러니 결국엔 남들의 삶을 동경하면서 ‘행복’을 쫓아가느라 정신없이 살아왔을 수밖에. 그러다 재미를 완전히 잃은 날을 만난다면 영혼은 완전히 말라 버렸을지도.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속아 의미 없는 만남과 관계를 좇기보다 순수한 앎으로 시작해 내 삶의 진화를 위해 끝없이 읽었다. 머릿속에 책이 쌓여 갈수록 내 안에는 점차 희망이 싹텄다.


 그 씨앗은 아무리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더라도 만족할 줄 모르는 상태가 됐다.

 책은 내 인생의 진기(眞氣)가 됐다. 나는 쉬지 않는 독서 과정에서 길을 찾았다. 때로는 나보다 한참을 앞서 걸어간 인생 선배가 남겨놓은 글을 읽으면서 실수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한다.


또 비슷한 또래의 작가가 쓴 글을 읽으면서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하며 격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불확실성과 모호함으로 가득 찬 삶 앞에 한 발자국 내딛기 위해 천천히 그들과 함께 걷는 기분이다.


 알코올 중독자도, 빛에 쫓기어 파산자도 되지 않았다. 대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그러는 동안 무엇보다 나는 자신에게 가장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에 비교하기보다는 어제의 나와, 오늘 아침의 내가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내일을 위해 한 발자국 내딛는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나는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책 자체만으로 나를 완전하게 변화시켰다거나, 구원의 손길이 되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캄캄한 터널 끝 빛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옅은 불빛의 손전등 정도의 역할 이상은 충분히 해줬다. 때론 발을 헛디디어 넘어지더라도 금방 일어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준 존재 역시 책이었고.


사실 책은 종이 몇백 장이 묶여 있는 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책의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말하는 바를 어떻게 받아들여 잘 적용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 명이 아니라, 어쩌면 수 백 명과 함께 걷는 기분이 들 터다. 한번 생각해 보자.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할 땐 나 혼자 걷는 길이 안전할까, 다 같이 걷는 길이 안전할까. 그래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이번 가을 공저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고 퇴고하는 중이다. 첫 공저를 미리 자축하기 위해 8월의 마지막 토요일을 시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과거 여행지나,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보내던 삶이 아니다.


그건 내가 즐기기 위함이었다면, 이젠 내가 삶에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보니 내린 결론이었다. 과거의 시간을 반성 한다거나, 상처라고 생각하지는 않겠다. 그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존재에 대한 감사와 희망을 더 이야기하겠다.


 세상 모든 작가가 모두 고맙고 소중한 존재가 됐다. 읽고, 쓰면서 느낀 감정을 녹여 ‘열 사람의 동행’이라는 글을 썼다. 아침에 눈을 떠 식탁에 앉아 초고를 쓰고 오후에 도서관에서 마저 마침표를 찍었다.


이 글을 쓰며 나를 반추했다.

그동안 넘어지느라 깨진 무릎을 보며 마음에 남은 수많은 상처를 꺼내어 되새김질하니 음식을 먹지도 않은 배가 벌써 부르다.


 글은 누구든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도 없는 게 글이다. 그만큼 더 즐겁고 살만한 인생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만이 과거의 경험, 앞으로의 다짐을 엮어 쓰는 것이 글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삶 또한 그리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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