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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Sep 06. 2024

끈기의 힘

마흔에 찾은 대답.  ‘끈기가 곧 성공 비법이다.’

한 달에 한 번, 월급날이면 찾는 곳이 있다. 사는 곳 근처 몇 안 되는 오프라인 서점이다. 인터넷에서 책을 구매해도 되지만 공을 들여 서점까지 오는 이유가 있다. 마치 책의 저자를 직접 만나는 기분이 들어서다. 인터넷에서 마우스 몇 번 클릭만 하면 구할 수 있는 책보다는 직접 손으로 책 등을 짚어가며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드는 순간이야말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를 드는 매력이 아닐까.     


 서점에서 6개월 넘도록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저자가 한 명 있다. 30년 넘도록 정신분석의로 일하면서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이름은 김혜남. 22년간 파킨슨병을 앓고 있음에도 늘 유쾌하게 산다는 그녀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과 나눈 대화를, 자신이 직접 겪은 병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신 산다면. 김혜남 저자]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 번뿐인 삶을 다시 산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원망만 가득했을 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일이었다.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책날개 인용-      

책날개의 마지막 문장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피해 책을 꺼냈다.      


50여 년 전 그녀의 바로 위 언니가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모두 그녀의 고 3 수험생 시절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언니와의 약속인 ‘의사’가 되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했고 결국 의대 입학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합격의 기쁨보다 마음속 허무함과 세상에 혼자만 남았다는 기분이 더 컸다고 했다. 자신을 축하해 줄 언니도, 할머니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곁에서 힘을 준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사촌 오빠였다. ‘인생은 최선만이 아니라 차선도 있다. 그러니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게 인생이야.’라는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대학 생활을 치열하게 버텼고 당당히 의사 자격을 얻었다. 성적 또한 우수했으므로 자신이 원하는 전문의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하게 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당시 국립정신병원으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왜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음속엔 오로지 분노와 원망 만이 가득 찼다.

아이러니한 건 살아보기 전엔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병원에서 그녀가 겪은 수년의 경험은 정신치료 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후회, 원망 대신‘내 삶의 다음 순서의 문을 열겠다’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에 놓인 길을 포기하지 않은 행동의 결과였다.


만약 그녀의 언니와 할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며 계속해서 방황만 했더라면, 만약 원하는 전공의를 얻지 못했다고 원망만 했었더라면 지금의 김혜남 저자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김혜남 저자의 <만일 내가 인생을 산다면>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질문 하나를 던진다. ‘삶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했다거나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 짓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다른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게 맞을까?.


그녀는 인생의 이 문제의 대답을 최선만이 아닌 ‘차선’과 ‘끝’이라는 두 문장으로 찾을 수 있었다.

      

 첫째.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에서 조금 방향이 어긋났다고 실패한 삶은 아니다. 삶이 나에게 준 차선의 선택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과는 무궁무진해진다.


고 3 시절, 나는 김혜남 저자와 달리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오래도록 찾지 못했다. 가슴에 커다란 돌 하나가 가득 찬 기분이었다. 때마침 인터넷에서 공무원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사를 봤다. 전문대학과 연계된 곳으로 졸업 후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희미하지만 여러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운동선수가 되고 싶기도 했고, 여행가, 전문 여행 사진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재능을 알지 못해 차선책으로 직업을 우선 선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 원망스럽기까지 했지만, 어느덧 이곳에서 스무 번째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긴 시간 동안 그때의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회사에서 받은 성과급을 자랑한 친구 A, 해외에서 하고 싶었다던 ‘자동차 도색 일’을 하며 꿈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친구 B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럽기까지 했다.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생각할수록 답답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몸부림친 날도 많았다.


 올해 마흔이 된 지금은 어제의 내가 많은 겪은 방황, 몸부림을 모아 글을 쓴다. 아니 이미 수년째 쓰고 있다. 써야 하는 이유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기 위해 한 줄, 한 줄 써놓던 일기장에서 해가 바뀌더니 A4용지 몇 장짜리 수필이 돼버렸다. 마음껏 여행을 가지 못했던 아쉬움은 책이나,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글감을 얻고 감상을 썼다. 목마른 사람이 물이 나오는 곳을 찾는다고 했던가, 그동안 쌓인 글을 모아 국내 공모전 몇 곳에 글을 투고해 성과를 얻었다. 상금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돈은 대부분 여행 경비로 사용했다.


2023년도에는 내가 터득한 독서 방법을 주제로 해서는 전자책을 출간한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20년 전의 내가 선택한 직업이 어쩌면 ‘하고 싶으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열린 또 다른 문은 아니었나 싶다.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으니까.

나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신기하단다. 어떻게 직장을 다니면서 글도 쓰고, 운동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지 하루 24시간이 나에게만큼은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고도 했다.     

 

둘째. 자신이 원하는 일, 목표를 얻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마음속 한구석 피어나는 나쁜 생각이 ‘그럴 줄 알았어!’다.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재능 문제를 탓하기도 하고 주변 환경을 원망하며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2017년도 겨울, 태어나 처음으로 가졌던 간절한 꿈이 하나 있었다. 작가였다. 나도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면 대한민국 여러 곳으로 강연을 다닐 것이고 자연히 수입도 늘어나리라 생각했다. 막무가내로 책 쓰기 수업을 찾아다녔다.


특강, 무료 강의를 전전하며 자기 위로를 할 즈음 지금의 스승님을 만났다. 수업료가 비쌌다. 평생회원으로 등록해 준다는 일종의 멤버십 제도였는데 자그마치 백만 원이나 됐다. 거의 두세 달 용돈과 맞먹는 액수였다. 포기할까 하다 6개월, 1년 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해볼 걸;’ 하며 후회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았다.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이나 가지고 싶은 물건의 수를 줄여가며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지금을 저축했다.


2019년도의 겨울 수강생이 된 나는 지금까지도 거의 매일 읽고 쓴다. 아직 자력으로 종이책을 출간하지는 못했어도 브런치 등단 작가라는 과정에서 얻은 작은 성공을 토대로 책 출간을 도전 중이다.

 매달 서울 잠실 교보문고에서는 스승님의 수업을 들은 많은 ‘작가’가 모인다. 출간 기념으로 저자 사인회가 진행되는데 수년째 반복하는 행사다. 처음엔 책 한 권 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 감히 참석하겠느냐는 대답으로 참석 권유를 거절했다가 올해 봄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 어디 해외 유명한 여행지를 다녀오는 경험보다 이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작가와의 교류에서 얻는 힘을 이미 느껴봤기 때문이다. 나이 불문인 모임에서는 할머니 작가부터, 초등학생 작가까지 있다. 처음엔 무슨 유명 연예인이라도 온 줄 알고 저자 사인을 받기 위해 같이 줄을 서 있던 사람도 있었다.


‘매일 쓰는 사람 이 작가 ’라는 말 덕분일까, 나도 어느새 ‘작가’라는 호칭이 붙었다. 그 덕분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미 몇 권씩 책을 낸 줄 안다.


그런 걸 보면 ‘끝’이라는 말은 ‘완전한 상태의 끝’의 아니라 ‘끝없이 노력할 것’을 의미하고 있을 터다. 김혜선 작가 역시 그런 노력을 기울였고 자신의 앞에서 닫힌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른 문을 찾아 열었을 테고.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말했다. 인생은 판에 박힌 되풀이와 놀라움이라는 이중구조라고. 그녀 역시 차선의 선택에서 얻은 놀라운 경험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끈기가 있었기에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었지 않았을까.


 책 읽는 내내 내일은, 다음 주에는, 무엇을 할지 다짐과 계획을 세웠다. 질문 하나가 내 삶의 태도를 변화시킨 셈이다.


삶은 최선이 없다. 모두 같은 크기와 모양인 선택의 문일 뿐이다. 그걸 어떻게 열고 나아가는지는 오로지 나의 태도에 달려 있다. 다른 사람이 들어간 문이 더 크고 멋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의 몫이다. 끝에 무엇이 있을진 아무도 모른다. 나는 내 눈앞에 닫힌 문을 쉬지 않고 열고 들어가 걸어가기를 반복할 뿐이다. 정말이지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생이니까. 내가 설마 작가를 꿈꾸는 40대 아저씨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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