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
오랜 인연을 맺었던 사람과의 헤어짐이 기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상이 사랑했던 애인, 가족,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웃까지. 그러나 대부분의 이별은 의도치 않게 일어난다. 나에겐 남다른 이별 경험이 있다.
같은 직장에 근무 중인 남자 직원 A. 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우리 회사에 입사했다. A의 입사 시기에는 취업난이 심해 경쟁률이 높았다고 들었다. 10여 년 전 나 때까지만 해도 그 많은 경쟁자를 뚫어야 하는 고난은 없었는데, 옆에서 들어보니 면접 때 영어회화로 면접관들과 의사소통이 되어 큰 점수를 얻은 점이 비결이란다. 입사한 뒤로 인사부서에 발령되어 총괄 업무의 보조를 수행했다. 그에 대해 아는 건 여기까지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고 그와는 오다가다 만나면 손 인사하는 정도가 다였다.
다시 그의 소식을 들은 건 저번 주 팀 별 회식 자리에서였다. 저번달 사직서를 제출했고 업무 인계 자만 정리되는 대로 곧바로 그만둔다고 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뇌리에 남아있다. 급한 출장과 휴가 처리 업무를 요청했을 때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도와줬고, 항상 얼굴엔 미소가 담겨있었다. 그럴 땐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더 들고 가 책상 위에 올려주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까지 굽혀가며 '감사합니다'를 외치던 그였는데, 의아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진했다. 업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끔 커피 한잔해요.' '언제 밥 한번 먹죠!'라고 건넨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였을까. 며칠 전 곧 마지막 출근 일이 될 것 같다고 인사를 하러 온 A의 낯빛이 좋지 않았는데, 어깨 한 번 두들겨주고 '고생했어요'라고 짤막한 인사말만 한 게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등 뒤에서 박수를 쳐주어야 할 때다. 때마침 어제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대를 물었는데, 저 구석에 앉아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한 대 어떠세요?"
"넵?. 감사합니다."
건물 옥상 한쪽에 마련된 흡연시설에 앉기 좋게 설치되어 있는 등나무 의자에 앉아 서로의 담뱃불을 붙였다.
"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에도 이런 나무 밑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었는데, 벌써 30년 전 기억이네요."
"아 정말요? 와 그럼 초등학교 때 신건 가요? 진짜 오래되셨네요!"
사실 가까이 가 앉기까지만 해도 A가 괜히 나를 귀찮아하면 어쩌나 하고 긴장했었다. 긴장은 나의 몫이었다. 평소에도 밝게 인사하던 표정 그대로 맞아줬고 인사말 몇 마디에 담배 연기까지 공유하고 있으니 어딘가 긴장까지 풀렸다. 어쩌면 오늘이 지나고 나면 다시 같이 말을 나눌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 그런가 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같은 층의 휴게실을 쓰면서 청소나 잡일을 같이 하며 나름의 동료애를 쌓았었기에 아쉬움을 잠그고 있는데, A가 한 마디 했다.
"사실은 회사에서 하는 일과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언젠가부터는 사람과 마주치는 일도, 대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대인 기피증까지 왔었어요."
"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죠? 그냥 적성과 맞지 않아서 선택한 사직이죠?"
"..."
선택이라는 말, 개인의 의사가 우선이었겠지만 A는 말없이 담배 연기만 바라봤다.
"사실, 저도 몇 년 전에 알코올중독을 좀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 통씩 울리는 전화벨이 노이로제가 와서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저도 그때 홧김에 사표를 써놓고는 '다음 주에 내야지' 했다가 서류철에 묻혀있는 일상에 그 기억조차 잊었어요. A 씨는 대단한 용기를 가진 겁니다. 저는 그럴 선택이 있었는데도 못했잖아요. 대단한 겁니다."
무슨 생각이 들어 내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A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을 거다. 말을 듣자마자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선배로써, 같은 시대에서 버텨내고 있는 내가 그의 등을 두들겨주고 싶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평소에 보였던 미소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가면 중 하나였다. A의 부서가 워낙 업무량이 많은 곳이다 보니 사람들과 대화도 많았고, 말도 안 되는 업무협조와 지시도 있는 곳. 그곳에서 그는 미소라는 무기를 들어 전투에 임한 것이었다.
A와의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아쉬움과 섭섭함이 컸을 텐데 그 가운데 끝까지 엽 사무실까지 찾아와 일일이 한 명씩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가 선택한 마지막 인사는 오전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고, 나도 그와 1층 현관까지 동행하여 그동안의 고마움을 전했다.
퇴근 시간 이 되어 업무 정리를 하고 있는데 SNS에 낯선 메시지 알람이 하나 생겼다. A의 인사였다.
"지금의 결정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선택을 위해 결심한 것이고, 멋진 미래를 위해 성장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뭇 10년이라는 시간 이상을 한 직장에 몸담으면서 요즘 들어 자주 불평하던 나를 반성했다. 평생직장이라 고 여기고 선택한 이곳에서 나는, 나의 성장을 위해 어떤 결심을 했었는가 하는 씁쓸함과, 다시 초심을 돌아가 보자는 다짐까지 세워진 이별. 그동안의 이별이 쉽게 지나친 보통의 이별이었다면, 이번만큼은 특별함이 넘친다. A의 결심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