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 교보문고에서 열리는 정기 사인회를 다녀왔다. 한 달에 한번,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모인다. 이곳에서 몇 년째 작가 흉내를 내고 있다. 보통땐 입지 않는 정장바지까지 꺼내어 입고 간다. 사람들과 교류할 땐 나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며 소개도 한다.
그래봤자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니 알 턱이 없다. 그런데도 다들 고갤 끄덕여준다. 좀 더 적극적인 분들은 어디서 글감을 얻느냐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설프게나마 작가의 폼을 내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영업비밀'이라며 작가라면 나만의 글 쓰기 노하우를 숨기고 싶은 충동!.
한편, 자주 얼굴을 만나지 못한 탓에 처음 보는 사람은 내가 실제로는 다른 일을 하며 글을 쓴다는 말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다.
"하루 몇 시간이나 글을 쓰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는 날이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이 '사색을 입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이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은 공통점이 있다. '작가'라고 소개하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정작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글을 쓰는지는 관심 밖이다.
모임에 참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다양하면서도 조금은 무례하다 싶은 질문이 나를 맞이했다. 첫 번째 질문은 대부분 같았다.
"어떻게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시는 건가요?"
"어떤 이유로 글 쓰기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다들 연배가 좀 있으신 작가님들 사이에서 혼자 젊은 티를 내며 있으니 주요 관심사가 나의 호구조사였나 싶었다.
이런 질문은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지금 하는 하고 있는 일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의미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보다는 당장 보이는 내 모습이 더 궁금할 뿐.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 신가요?"
"어떤 사람, 작가를 꿈꾸나요?"
라든가 하는 나와 당신이 서로 연계될 수 있는 질문이 아쉬웠다.
낯 선 사람과 알아가는 과정, 직장에서건 모임에서건 일상에서 주고받는 질문 하나가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생각이 깊어지자 더 이상의 선입견을 억지로 입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는 삶 자체를 즐기던 내게 커다란 질문이 하나 생겼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많이 읽는다고 해서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쓴다고 해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나만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쓰기의 쉼표를 찍고 다음 이어지는 문장을 이어 갈 수 있는 법이니까.
글 쓰기에 심취할수록느끼는 것은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지금 모습에 집착하는 가다. 물론 좋은 직장을 다니거나, 환경이 나은 곳에서, 좋은 옷을 입고 있다면 인정해주고 대우도 해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말 중요한 건 지금이 아니라 점차 어떤 사람으로 변하 가는 가다. 지금의 모습이 무의미 해진다는 의미다.
실제 유명 작가들 중 처음부터 작가였던 사람은 드물다.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의 벽돌이 하나씩 쌓여가다 보니 작가로 완성된 것이지, 어디 공장에서 찍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만큼 각자만의 개성 있고, 때로는 눈물 콧물 다 빼놓을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작가인 셈이다.
만약 평생 몸이 건강했다면 [오체불만족]을 쓴 작가는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로버트 기요사키 역시 없었을 터다. 이들이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결핍을 경험했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작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혹시 나 또한 스스로를 허울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사느라 진정 내가 써야 할 글은 생각하지 않았는가 챗찍질 해본다.
쉬지 않고 읽고 쓰기를 하지만 더 많은 생각의 꼬릴 이어가는 사람. 사람들의 질문에서 하나를 배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하는지, 무슨 내용의 글을 써야 하는지 오늘도 깊은 생각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