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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0 글쓰기20] 꿈만큼은 슈퍼스타.

by 회색달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했다. 직장에서 일할 때도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가 발생할 땐 눈앞이 캄캄해지는 날도 많았다. 성격 탓이다. 혼나는 걸 싫어하면서도 또 남에게 지는 걸 못 본다. 이런 내 모습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축구 같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팀 스포츠를 하면서 친분을 맺기도 했지만 얼마 못 갔다.


나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수시로 공황장애와 대인 기피를 앓았다. 약을 먹으면 나아졌다가 재발하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혼자 하는 일을 찾았던 것 같다. 그래서 헬스도 했고 수영도 했고 달리기도 했다.


육 개월 전부터 테니스를 배웠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전날 늦게까지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집에 와 쓰던 글을 퇴고하다 쪽잠을 자고서라도 테니스장에 나갔다. 개인지도 20분 후에 기계에서 자동으로 날아오는 공을 오른손에 쥔 라켓으로 휘두르다 보면 숨이 찼다. 입고 입던 티는 금방 땀에 젖었고 내가 뛰어다닌 곳엔 땀방울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라켓을 휘두르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손바닥에 물집이 생긴 지도 모르고 휘둘렀다.


그렇게 꾸준히 다니다 저번 주에 처음으로 개인지도 받는 다른 회원들과 페어(팀)을 이루어 자체 시합을 했다. 순위에 들면 상금도 있다는 코치의 말에 다들 말은 안 했지만, 표정이 들떠있었다. 페어는 총 열 팀. 한 게임당 경기 포인트 6점을 먼저 내면 승리하는 규칙으로 진행했다. 나는 오십 대로 보이는 아저씨와 함께 페어를 하여 시합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네 번의 경기에서 모두 이겼다.


포핸드의 성공 빈도가 높아질수록 경기는 즐거웠다. 하고 싶은 스윙도 많아졌고 처음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짧은 경기 시간이 아쉬웠다. 점점 더 오늘의 스윙에 빠져들면서 다음 경기가 기대됐다. 앞으로 두 번만 승리하면 상금은 우리 것이라고 기대했다.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자만심이 컸던 탓일까, 실수가 잦았다. 주눅 들어 스윙이 약해지면 네트에 걸리기 일쑤였다. 같은 팀 아저씨께서는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남은 경기에 모두 패했다. 최종 시합 결과는 종합 3위. 그래 봐야 태린이 사이에서 얻은 승리의 기쁨이니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일도 못 됐다.


시합장에서 곧바로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테니스 경기의 규칙과 유명선수들이 등장하는 영상을 찾아봤다. 패대러, 나 달 외에도 국내 이형택 선수의 영상도 봤다. 점점 더 ‘어떻게’에 집중하게 됐고 앞으로의 스윙 자세나 경기에 임하는 마음 상태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고민 끝에 무조건 이기는 것 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경기는 내일과 또 그다음 날에도 있을 것이고 나는 오늘 해내지 못한 스윙을 내일 잘하면 될 뿐이었다. 그게 테니스 슈퍼스타의 비법이면 비법이었다.


테니스장에 들어서면서, 영상 속 선수들의 대화나, 행동, 자세 등을 떠올렸다. 비록 영상으로 배운 선수들의 동작이었지만 도움이 됐다. 스스로 승리욕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조금만 무리하면 허리든 무릎이든 관절이 아프기 시작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겨우 몇 개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와 같으니 무리할 필요도 없었고 이 순간을 즐기면 될 일이었다. 지난달부터 발리 동작과 백핸드 동작을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간결한 스윙 한 번에 상대방 코트 구석에 꽂히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 부족하지만 공중에서 날아오는 공을 한 번에 쳐내어 공격포인트로 쌓는 짜릿함도 기대 중이다.


달리기, 헬스, 수영, 축구, 배드민턴, 탁구 등 다양한 운동을 해봤지만, 테니스만큼 여러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예는 없었다. 우선 상대방이 내 쪽으로 쳐낸 공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러다 속임수 공격에 점수를 빼앗길 수 있다. 공의 회전 역시 배운 것처럼 스윙하다가는 네트에 꽂히거나 경기장을 넘기기 일쑤다. 체력적인 면도 문제였다. 전체 경기 시간은 20~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때 양발의 뒤꿈치가 계속 떨어져 있어야 순간적으로 달려나가거나 방향을 전환할 수 있으므로 계속 스플릿 스텝을 유지해야 했다. 전반적인 테니스 실력 향상을 위한 방법을 고안해내야만 했다.


테니스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두 가지를 명심하기로 했다. 하나는 주 2회 이상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테니스 코트에서 코치가 던져주는 볼을 20분 내내 쉬지 않고 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좌우 양쪽으로 번 갈아 가면서 구석으로 향하는 볼을 따라 다니다 보면 오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치 몇 시간 흐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체력이 부족해서였다. 처음 하는 운동이다 보니 스텝이 어색했으므로 힘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발이 따라가질 못하니 팔의 스윙에 의지했다. 그러니 실수 연발일 수밖에.


달리기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최고의 해결책이었다. 처음 5분 10분을 달릴 때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힘이 들었지만, 시간과 거리가 늘어날수록 호흡은 편해졌고 속도는 빨라졌다. 그 결과는 그대로 테니스 코트에서의 움직임까지 도움을 줬다. 20분을 빠르게 움직여도 숨이 차질 않았다. 모든 볼에 발이 먼저 움직였고 스윙의 궤적과 볼에도 힘이 실려 코트 반대편 구석에 꽂혔다. 모든 운동은 하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다른 하나는 인정하는 연습을 하는 일이다. 단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나의 약점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방법을 찾는 데 노력하기로 했다. 테니스의 점수는 일반 다른 스포츠와는 다른 시스템이다. 0:0, 0:15, 0:30, 0:40 이후 게임 포인트를 먼저 취득하는 쪽이 승리한다.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잘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상대방의 실수도 한몫한다. 이 점은 상대방에게도 같이 적용한다. 상대방의 좋은 공격에 받아내지 못한 나를 원망하기보다 엄지를 세워줄 수 있는 게임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이란 상대방일 이기는데 집중하는 것보다 나보다 나은 상대를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과정임을 배웠다.


실력은 단기간에 쌓이지 않는다. 과정상 여러 번의 실수와 성장이 반복돼야 하고 마음처럼 결과라 나오지 않을 때도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을 통해서는 오로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힘만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는 패배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힘이 길어진다. 이런 반복이 곧 나의 실력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삶도 이와 같다고 느낀다. 거의 매일 감당하기 힘든 속도에 휩쓸려 하루를 보내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변화에 대응할 힘을 기를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은 나의 노력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해결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은 분명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몇 개월째 실력이 그대로 인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이 있지만 하루하루 나만이 할 수 있는 스윙과 호흡에 집중하며 코트에 들어선다.

여전히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두려움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겨낸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매일 아침 눈을 뜬다. 그래서 일까, 하루를 마칠때마다 매번 장애물을 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오늘도 테니스 운동화의 끈을 다시 한번 세게 묶으며 다시 코트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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