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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킨다.

[100-100글쓰기25]

by 회색달

나에게 12월 1일은 특별하다. 마치 1월 1일 새해의 시작처럼 여긴다. 3년째 됐다. 좋은 점이 있다. 다들 연말 파티에 젖어 있을 때 조금 거리를 두고는 차분한 마음으로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나 역시 연말 파티를 즐기는 데 있어 빠지지 않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랬던 내가 변하게 된 계기가 있다. 몇 년째 책을 쓰겠다며 노트북 앞에서 앉아 있는 시간만 늘었지 진도는 나가지 않은 탓이다. 원인을 생각해 봤다. 새해다짐은 얼마 못 갔다. 봄이면 날씨가 좋으니 사람들과 어울렸고 여름엔 더위를 피해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함께 했다. 겨울엔…….


주말이면 늦잠을 자던 내가 토요일이면 대청소를 시작했다. 일요일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달리기 복장을 하고 근처 산책로로 향한다. 어느덧 3주째가 됐다. 습관이 됐다. 덕분에 오늘도 달렸다.

지난 11월 마라톤 대회에서 무릎 상처를 입어 제대로 걷지 못했다가 조금씩 회복된 덕분이다.


지난주 일요일 목표는 5km. 30분이면 충분히 달리던 거리였다. 다시 뛰니 숨이 달렸다. 40분이 넘어서야 완주했다. 무릎이 시큰거렸고 아프지 않았던 허리까지 통증이 느껴졌다. 중간에 멈추고 싶었지만 대신 속도를 줄여 천천히 달렸다. 부상의 후유증이다. 지난 몇 주를 환자로 생활하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으니 그럴만하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음악을 빠른 곡으로 바꿔 들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어김없이 달리기 편한 옷을 입었다. 밖으로 나오니 입김이 나왔다. 날씨가 지난주 보단 쌀쌀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엔 출발 지점을 다른 곳으로 정했다. 집에서부터 걸어 10분 이상을 가야 했다. 횡단보도 신호까지 건너려니 더 걸렸다.


왼 윗 팔에 스마트폰이 담긴 파우치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오늘도 같은 거리를 달린 생각이었지만 이전보다는 1초라도 더 빨리 통과하고 싶었다. 음악도 경쾌한 리듬을 골랐다. 손목과 발목, 허리 목을 순서대로 스트레칭 한 뒤 운동화 끈을 다시 정리했다.

미리 스마트폰에서 설정해 둔 달리기 신호가 가까워졌다. 모든 운동이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럴 땐 실력 외에도 장비 또한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열부터 거꾸로 숫자를 세던 남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켜졌다. 이제는 달리기를 시작해야만 했다.


순조롭게 1km를 지났다. 산책로의 사람을 피해 가며 속도를 냈다. 귓가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반환지점을 통과하고 3km를 지났을 때였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목도 아팠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사람을 지나는데 괜히 피해라도 줄 까싶어 억지로 숨을 참았다. 분명 신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 했다. 그리고 고통 역시 이겨낼 힘을 준다고 했다. 그건 나를 과대평가했음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지난 마라톤 대회 골인지점에서 느꼈던 희열을 생각해 냈다. 특히 언덕이 많은 코스였다. 첫 대회에서 코스를 미리 알아보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지만 올라간다면 반대로 내려올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위로했었다.

반환 지점을 돌아 처음 만난 언덕을 내려오는 동안 거짓말처럼 그 생각이 들었다. 바닥났던 체력이 다시 타올랐다. 여기까지 왔으니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두 시간 넘게 달리며 마지막 지점을 통과하는 나를 상상했다. 다시 생각해도 벅찬 감동이었다. 그 덕분인지 달리는 동안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도 가벼워졌다. 지금 느껴지는 기분이 러너스 하이 인가 싶었다.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기록은 29분. 아직 이전의 최고기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분명 앞당긴 기록이었다.


작년엔 바디프로필 촬영일을 12월로 계획하고 다이어트를 진행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좋지만 내가 '나'로써 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짐을 세우지만 자꾸만 포기하는 '습관성 포기 증후군'을 고치기 위해선 그 방법이 제일이었다.


하체운동을 심하게 한 날은 계단을 내려오는 것조차 힘들어 한 손으로 벽을 짚어야 가능했다.

운동 때마다 비공계로 남겨둔 그날의 일기를 살펴봤다. 무게와 그날의 몸상태, 감정 등을 썼다. 어느 날은 심한 어지러움증을 느낀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운동을 반복했다. 기록,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반복은 나의 거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남긴 기록한 줄이 나의 나이테가 됐다.


'절대! 부상당하지 않아야 한다.' 기록 중 한 줄이었다. 유난히 허리디스크에 자주 걸렸다. 그렇다 보니 운동 때에도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삐끗했다. 그런 날엔 며칠을 고생했다. 그만큼 운동 효과도 줄었을 터다. 그러니 다짐으로 세워 둘 수밖에.

촬영을 마치고 다음날 사진을 받았을 땐 이 맛에 운동한다 싶었다.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남들의 선명한 복근을 나도 가졌을 때의 기분이란.


집에 돌아와 땀을 닦아내고 세탁을 마친 옷으로 갈아입었다. 멈추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지금 이 고통이 성장통이라 여겼다. 힘들지만 그럴수록 내가 선택한 고통이라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웨인다이어의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한계 없는 삶이란 무엇인가?
한계를 뚫고 나가면 무엇이 존재하는가?



오래도록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뛰어넘어야 하는지는 고민 안 했다. 한계에 대하여 저자는 창의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내 앞에 놓인 사다리의 맨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 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두렵고 흔들거리겠지만 분명 낮은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한계를 봤다. 한계를 뛰어넘었다. 고통이 나는 괴롭혔지만 조금씩 이겨냈다.


나의 한계는 어디인지 다시 궁금해졌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쉬지 않고 달리고 걷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사다리 한 칸씩 오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터다. 고통을 통해 배움을 얻었다. 쓰러질 것 같다 생각이 들면 성장통이라 생각하자. 시간이 흐른 뒤엔 분명히 알 수 있다. 한 걸음 내딛는 연습의 끝이야말로 그것만의 성장 비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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