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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Feb 21. 2024

17,글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글쓰기를 시작하면 일어나는 일

23.11.18. (00:05)


 글 쓰기를 시작했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보통의, 평범한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일상의 기록. 이전에도 여러 곳에 그날의 생각을 기록했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의 역사는 몇 년 전 참여했던 독서 모임에서부터였다.

매주 토요일 저녁 여덟 시. 약 2시간 동안 이어지는 모임은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공유하며 보낸 시간들.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신기하고 잊고 싶지 않아, 그다음 날 새벽까지 기억을 기록으로 남겼다. 7년 차 글쟁이의 첫 역사였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과의 대화가 힘들 정도로 대인기피와 공황장애를 앓았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이라는데, 아마도 당시 심한 우울증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곳에서만큼은 나의 이름만이 불릴 뿐, 나의 다른 면은 어디서도 드러나지 않으니까. 정신과 약을 의존하여 잠을 청한다는 사실도 몰랐고, 알코올 중독을 겪었던 사람인 줄도 몰랐다. 그저 함께 같은 책을 읽고, 한 주간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약속하는 사이. 그렇게 마음 한쪽의 회색빛은 점차 옅어져 갔다

 

 그 뒤로 한 줄, 두 줄의 소감을 SNS에 남겼다. 누군가의 ‘감성팔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처음으로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일. 일상을 기록하는 시간이었으니까. 특히 모임에서 만난 이들의 말 한마디를 적어놓았다가 책의 내용과 연관 지어 다시 들려줄 땐 감사의 인사까지 받았다. 정작 본인은 전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함께 하는 동안 저절로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모임은 코로나 19로 집합 제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매주 이어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온라인 모임으로 장소를 옮겼다. 유행처럼 번지던 비대면의 독서 모임. 하지만 우리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결국 모임이 파행됐다.

 

 한동안 사람 앓이를 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줄의 문장을 한 편의 글로 만들었고, 결국에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쓰는 나와 마주할수록 궁금했다. ‘지금 하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인가?’ ‘해야 하는 일인가?’. 전업 작가도 아니었고, 뛰어난 글쓰기 실력도 없는데 왜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저 서른의 말미를 지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을 뿐이었는데.


 질문에 조금 더 집중했다. ‘쓰는 일’ 이 자체의 이유를 달자,  ‘이야기’라는 대답이 뒤따랐다. 그제야 나는 이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할까. 지금도 현실은 야근이 밥 먹듯 반복되는 고된 직장인의 삶이지만, 지금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내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좋아하는 일을 위해 도서관과 카페를 찾아 기록하는 사람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오늘을 기록하는 날짜는 11월 18일.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달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신의 올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능력 중에서 가장 오래 할 방법은 기록으로 남겨두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글쓰기라는 기록은 쉽게 잊히는 오늘을 영원토록 남겨둘 수 있는 발명품과도 같은 건 아닐까.


 최근 인터넷을 조금만 뒤적이면 기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을 통해, 글을 통해, 사진을 통해. 방법은 다르지만, 각자의 목적은 같을 것이다. 조금 더 기억하고 싶어서. 나 또한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한 편의 글을 남기며 나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 중이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고마움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며. 고된 삶을 잘 이겨내었다고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등을 두들겨 주기를.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내면,  미래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내면 미래에는 해야 할 일을 하며 살게 된다.
-축구 선수 이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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