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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떠난 자리에 추억이 피었다.

by 회색달

휴일 오전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 앞에 흰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고갤 드니 어제까지 활짝 폈었던 벚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면 거실 안까지 꽃잎이 날아온 적 있다. 그럴 땐 닫혀있던 모든 방문을 열어뒀다.


단지에서 도보 10분이면 소양강의 자락에 도착할 수 있다. 봄철이면 벚꽃 구경한다고 사람 넘친다. 주차할 곳이 없어 불법 주차까지 극성이다. 경비 아저씨가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자기 자리인 마냥 대놓고는 시치미를 떼며 걸어간다. 나는 그 뒷모습을 몇 번이나 본 적 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벚꽃은 질 때 가장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쓰러져 죽어가는 사무라이를 보며 벚꽃처럼 쓰러진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말이다.

벚꽃의 마지막을 표현한 노래도 있다. 가수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다. 마지막 바람에 날리는 꽃잎과 사이를 걸어가는 연인의 설렘에서 이별 후 혼자 남겨진 화자의 슬픔과 그리움을 드러낸 가사가 인상적이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저편에서 그대여 네 모습이 자꾸 겹쳐”


벚꽃이 피는 순간도 아름답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추억을 승화시키며 괴로움을 달랜 내용이다. 발표된 지 한참 되었지만 정확한 가사를 모른다. 그런데도 이맘때 즈음이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주말이라 강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인파에 휩쓸려 나까지 앞으로 가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지 다녀오면 왕복 두 시간 정도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중간중간 준비된 벤치에 앉아 쉬어가며 꼼꼼히 오늘의 봄을 만끽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의 봄을 잊게 되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느껴지는 바람과 벚꽃의 흩날림, 발밑 피어난 민들레까지 모두 나의 오늘을 위해 존재하는 순간이니 아껴야 한다.


벚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안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규칙적인 모양이 있다. 일단 만개하기만 하면 넓은 오각형 모양의 꽃잎 다섯 장이 꽃 술을 감싸 안는다. 향기는 아주 가까이 코를 대야만 미약하게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진하지 않아 좋다. 종류도 다양하다 왕 벚꽃, 겹벚꽃, 산 벚꽃, 청 벚꽃, 수양벚꽃, 춘추벚나무꽃이 있다.


3월경부터 피는 왕 벚꽃의 마지막 즈음 겹벚꽃과 청 벚꽃이 이어 피기 시작한다. 이름처럼 가을에도 피는 춘춘 벚꽃이 있으니 지는 벚꽃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기만 하면 그뿐이니까.


소양강과 하늘 사이 벚꽃의 수놓은 만큼 봄이 머물렀다. 새들도 가까이 날아와 사람 구경하며 자기들만의 봄을 만끽하고 있다. 사람들은 벚꽃과 가까이 사진 찍으려고 꽃잎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크게 웃는다.


벚꽃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시골 살 땐 집 앞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태어난 벚꽃 나무가 있었다. 나이를 가늠한 적 없다.

봄에 피고 날이 더워질 즈음 지기를 계속 반복했던 만큼, 그에게 중요한 건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 일이었을 터다. 나무에 오르다가도 떨어진 적 많았다. 그런데도 마을 또래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정해진 시간만 되면 이곳에 모였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다. 백 원짜리 동전 몇 개 손에 쥐어 나오면 그날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가게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사 나누어 먹고, 나무에 매달려 흔들면 마치 눈이 내리는 듯해 떨어지는 꽃잎을 손으로 잡으며 놀았다. 그 시절 기억을 돌돌 말아 머릿속 어딘가 깊게 보관해 둔 것을 오늘의 봄이 펼쳐 보여줬다.


때를 맞추어 발밑 세상은 점점 노란빛으로 물들어간다. 눈에 띄는 것이 민들레다. 이맘때 즈음이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민들레인데 새삼스럽다고 하겠지만 어느 꽃 인들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러나 민들레는 좀 다르다. 진한 향이 나는 것도 아니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대신 혼자 피는 법이 없다. 둘 이상이 모여 작게나마 군락을 이룬다.


민들레는 서러움을 많이 느꼈을 터다. 바람에 날려 보도블록 사이 흙에 자리 잡고 피었다가 사람들 발에 밟히고, 옷가지나 코에 붙어 미움을 받았을 테니까.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바람에 날려 다니다 방황하던 시기가 떠오른다.


하필 커다란 벚나무 밑에 자리 잡은 민들레에 특별한 애정을 느낀다. 꽃말의 의미처럼 그늘 속에서도 노란,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모습은 애틋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어디론가 나를 데려다줄 바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그 옛날 어머니께서 민들레의 잎을 캐다가 무침을 해주신 기억난다. 어머니도 봄을 좋아하셨고, 꽃을 사랑하셨다. 투명한 음료병에다 물을 받아 꺾은 꽃을 꽂아둔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봄과 벚꽃과 민들레를 순서대로 느끼니 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순간 아이들이 뛰어가며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바람이 분다. 꽃잎이 너무 빨리 떨어질까 가슴 졸인다. 계절은 오고 가는 것. 내가 잡으려 해도 불가능하다. 다시 피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잠시나마 옛 추억을 봄 대신 심을 수 있었다. 4월이다. 오늘따라 봄 하늘이 파랗다. 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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