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살 난 파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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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달
거친 파도를 이기는 법은
오직
바람이 잦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그물을 손질하며
힘을 기르는 것이다.

시퍼런 칼날이 춤췄다.

귓전에 울리는 건

악다구니 쓰는 바람의 비명뿐.


작살난 배는 널뛰고

세상은 온통 잿빛 아가리.


집어삼키려 드는 파도 앞에

어금니 깨물고 버텼다.


돛대는 부러지고

그물은 찢겨 나갔지만

내 두 손아귀 힘은 그대로다.


염병할 바다 놈아,

이번엔 네가 이겼다 치자!


항구의 썩은 내음 맡으며

녹슨 닻을 내린다.


상처투성이 몸뚱이 잠깐이라도

쉬어주어야겠다.


하지만 봐라, 저 빌어먹을 수평선!

꺼지지 않은 불씨가 저기 있으니까.

새 날이 오면, 다시 나간다.


이번엔 빈손으로 오지 않겠다.

이 악물고 갈아온 칼날로

네놈 목줄을 따러 갈 테다.


기다려라, 망할 파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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