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페이지 멘붕기
사진이 도착했다.
메일을 열고 첫 번째 컷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박스 윗면은 테이핑도 안 돼서 들떠 있고
조명은 반사돼 글자가 안 보였다.
색감도, 구도도 어정쩠다.
내가 참고로 보냈던 레퍼런스들,
그 퀄리티의 반도 안 되는 사진이었다.
다시 찍자니 시간도, 돈도 없었다.
뭐 하나 진행할때마다 이럴까..
너무 가성비 업체들만 찾았나?
출시 일정은 코앞인데
다시 맡기면 1~2주는 걸린다.
결국
내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그 사진으로 가기로 했다.
그때부터 내 마음에 새겨진 규칙 하나.
“사진 촬영은 무조건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다.”
요구사항은 입으로 말해야 챙겨진다.
말하지 않으면, 디테일도, 진심도 빠진다.
사진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상세페이지 기획은 내 손으로 했다.
돈 주고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맡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내 제품 이야기는 내가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제품을 만든 이유,
들인 시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성분과 기준들.
그걸 페이지 안에 꾹꾹 눌러 담았다.
몇번을 뒤엎었는지 모른다.
이건 표현이 이상해.
여기 이해하기가 어려운거 같아.
34번째 수정본.
[찐_진짜_레알_정말_최최종_최종_기획서34.pdf]
이보다 신경을 더 쓸수 없으리라
기획이 끝났으니 내 손이 되어줄
디자이너가 필요했다
또 크몽에서 포트폴리오를 뒤졌다.
문제는 어린이 영양제를 해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결국 기준은 하나.
“읽었을 때, 설득이 되는가.”
그 기준으로 디자이너를 골랐다.
견적은 80만 원.
고민 끝에 진행했다.
1주일 후, 초안이 나왔다.
기획이 잘 살아 있었고
페이지 흐름도 만족스러웠다.
처음이였다. 작업물을 보고 만족스러운게..
드디어 팔수 있는건가?
그런데 들려온 말…
“건강기능식품은 광고심의 받으셔야 해요.”
모든 건강기능식품은
건강기능식품협회에 심의를 받아야만 광고를 할 수 있단다.
위법이든 아니든 무조건 의무라고 한다.
뒤이어 들은 건
“심사비는 30만 원이에요.”
멍해졌다.
‘내가 적은 글이,
적절한지 아닌지 봐주는 데 30만 원?’
그 순간
화가 났따.
이게 정당한 금액일까?
촬영비 20만 원,
디자인비 80만 원.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일이 들어가고, 사람이 움직이니까.
그런데
심의비 30만 원은 뭘까?
법에 맞는지 확인하는데 내 돈을 내고 하라니
그것도 한번 봐줄때마다
에어팟 하나씩을 사주는 꼴이다
사업을 하면서 처음 느낀 감정.
“이 구조, 너무 당연하게 나한테 돈을 요구한다.”
그것도
법 위반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법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한다.
“심의 받으셔야 해요.”
“30만 원이에요.”
“거절되면 다시 내세요.”
이 말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화가 났다.
그리고 거절됐다.
“기능성 암시 우려”
“과장 표현 포함”
그냥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 하고 싶은건데
광고 심의가 자꾸 가로 막았다.
결국,
심의 양식에 맞춰
표현을 바꾸고,
진심을 지우고,
디자이너에게 다시 넘겼다.
완성된 상세페이지는
깔끔했지만,
아무런 감정도 설득도 없었다.
그제야 실감했다.
건강기능식품은
돈은 더 드는데,
말할 수 있는 건 훨씬 적다.
기준은 까다로운데
그걸 소비자에게
말할 수도 없다.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식품
어떤 걸로 허가 받는게 옳을까?
그래도 나는 건강기능식품을 택했다.
힘들고 손해봐도
아이들이 먹는 건
더 깐깐한 기준을 통과한 제품이길 바랐으니까.
그렇게
내 진심은 다 빠지고
표현만 남은 상세페이지가 완성됐다.
팔 준비는 끝났지만,
그게 내가 만들고 싶었던 페이지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음 화 예고 : "광고비만 쓰고 있었다"
광고는 돈만 쓰고 성과는 없었다.
결국 답은 검색광고와 인스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