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일 년이 지난 일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가족의 평화가 삽시간에 깨져버렸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분하고 답답했다. 돌이켜 볼 때 살면서 가장 억울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름 아닌 벌초 얘기다.
‘징~징~’ 숙부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계좌번호였다. 그리고 며칠 뒤, ‘바쁘냐 돈 보내라’는 무미건조하고 정이라고 찾아볼 수도 없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 탄성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주변에 있던 동료가 깜짝 놀라서 가던 길을 멈췄다. 재빠르게 주변을 수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매미 소리가 우렁찼다. 엄마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을 통화가 안으로 새어 들어가 봤자 좋을 리 없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아니, 무슨 떼인 돈 받아내려는 사람처럼. 후~ 아,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녜요?”
“한 두 번 겪은 것도 아니고 괜한 일로 스트레스받지 말어. 너만 손해야. 엄마가 돈 보낼까?”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축의금 두어 번 낼 정도의 금액이니 당장이라도 계좌이체를 하면 끝날 일이다. 문제는 숙부의 태도다. 삼 년째 이런 식의 통보가 못마땅하다 못해 얄밉상스럽다. 이것이 이토록 부화가 치미는 이유였다. 이게 전부다.
아버지는 음력 7월 보름이 되는 한 달 전부터 벌초 일로 신경이 예민해진다. 장사꾼의 꾐에 속아 적잖은 가격을 주고 구입한 예초기가 신기하게도 현장에 가면 꼭 말썽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초 일주 일 전에 성능 검사 한 번, 벌초 당일 산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제자에게 성능 검사를 다시 한번 맡긴다. 그렇게 하더라도 예초기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말썽을 피우고 말았다. 며느리와 손녀 앞이라 화를 내지도 못했던 아버지. 속으로 성난 화를 꾹꾹 찍어 누르느라 이글 거리는 태양보다 더 붉게 상기된 아버지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반면에 숙부는 천하태평이다. 벌초에 관해 평생 나 몰라라 하는 아우의 무관심에 아버지도 손 놓은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것은 내게 커다란 불만이었는데, 차라리 말이나 말지 명절 때마다 실언만 뱉고 해마다 되풀이한다. 더욱이 삼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숙부가 뒤늦었지만 형님의 빈자리를 대신해 자식 된 도리, 어른의 도리를 이행하겠다고 선언했 건만 이 또한 실언이었다.
숙부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아버지가 벌초를 끝까지 남의 손을 빌리거나 돈으로 해결하지 않으셨던 이유를 말이다. 아버지는 이것 만이 당신께서 미처 하지 못한 효를 살아생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계셨다. 대신에 아버지는 자신이 생을 마치게 되거든 봉안시설에 납골을 해달라고 엄마에게 일찍이 이르셨다고 한다. 지금도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벌초는 숙부와 내가 반반을 부담하기로 하고 관리조합에 위탁을 맡겼다. 위탁자는 숙부 이름으로 되어 있기에 관리조합에서는 매년 때를 맞춰 숙부에게 연락을 취한다. 문제는 위탁비를 지불해야 벌초 작업이 이뤄지는데, 선(先) 지불 후(後) 청구로 해도 될 것을 숙부는 무조건 내게 비용을 먼저 청구한다. 이것 마저도 떼인 돈을 받아 내려는 사람처럼 군다. 엄마는 이런 숙부를 이해하라고 하지만 난 추호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엄마와의 통화를 마치고 숙부에게 비용을 이체한 후,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네 시간이 지나 숙부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요약하자면, 숙부도 바쁘니 앞으론 장손인 내가 맡으라는 것이다. 어차피 벌초는 관리조합에서 하는 것이고, 숙부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비용을 송금하는 일 그 하나뿐이다. 그런데 이것도 하기 싫은 모양이다. 더욱이 여기서 장손을 들먹이다니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어도 유분수지. 기가 찼다. 그래도 답장을 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숙부는 또다시 태평일 테니.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여 조리 있고 최대한 정중하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조카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숙부는 기분이 언짢았던 것일까? 숙부에게 전화가 왔다. 바쁜 시간이기도 했고 받고 싶지도 않았다. 이어 숙부가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또한 요약하자면, ‘전화도 받지 않고, 돈 보내라 그래서 기분이 나빴냐, 너에게 없는 돈 보내라 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벌초를 하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라’ 면서 ‘나는 한 번도 숙부들에게 덤빈 적이 없다, 잘 살아라, 앞으로 보지 말자’였다.
옴마, 세상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만한 상황이 됐으면 심란할 법도 한데 전혀! 물론 의도한 바 없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리라 생각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숙부는 둔치다. 미련한 사람이 틀림없다. 둔치를 상대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대꾸는 가볍게 패스해 버렸다.
이날 저녁 엄마와 무려 두 시간이나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통화를 나눴다. 엄마는 이미 숙부와 통화를 한 터, 숙부에게 상처를 받았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엄마는 통화 내내 내게 날이 선채로 말을 이어갔고, 나는 이 상황이 너무도 억울하여 감정 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 곁에 있던 아내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했다.
결국, 모자(母子)의 통화는 ‘사랑해, 아들’, ‘사랑해요, 엄마’로 끝을 맺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는 옛 말이 틀린 거 하나도 없다고. 우리 가족은 미꾸라지 한 마리로부터 평화를 뺏겨 버렸다. 흐려진 물은 또다시 흐려지는 법이 없도록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숙부에 대한 분을 삭이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 한다. 그러나 시간은 단지 지나갈 뿐 치유의 능력은 없다. 그런데도 시간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은 대부분 시간상으로 멀어지면 아픔에서, 고통에서, 슬픔에서 그 기분이 나아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음력 7월 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조만간 관리조합에서 내게 연락이 올 것이다. 매년 돌아올 음력 7월 보름 이 시기, 이 뜨거운 여름날마다 떠오르게 될 그때의 분하고 답답했던 감정은 이제 메말랐다. 다만, 언제든지 복받치는 감정이 훅- 하고 내 가슴팍을 때릴지 모르겠다. 만약 그럴지라도 마음을 잘 다스려 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슬퍼하실 것이다.
누워서 내 얼굴에 침 뱉기와 같은 창피한 이야기다. 그래서 글쓰기가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쓰고 발행한다. 이제 더 이상 마음속에 담아 두고 싶지 않아 서다. 아버지도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