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연말연시 무렵엔 온갖 오묘한 감정들이 뒤섞이는 바람에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그러나 올핸 이상하리만 큼 고요하네. 물론 걱정거리와 조바심 나는 일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 숨이 나오고, 입술이 바싹 마르고, 잠 못 이루는 날이 허다하다. 다만 당장 해결될 일이 아니므로, 당장 사라지지 않을 사항이므로 내려놓는 것에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지금은 연말연시다.
한 동안 쓰고 싶었던 주제가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쓰는 것보다 보고 듣는 것에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글이 구월 말. 그럼에도 부지런한 작가님들 덕분에 로그아웃 하지 않고, 대신 덧글을 남기는 일에 부지런을 떨 수 있었다. 나는 알고 있다. 잠깐의 쉼이 자칫 영원한 쉼으로 빠져 들 수도 있다는 것을. 꾸준하게 쓰지 못할 바엔 이 곳에서 꾸준한 교감 나누기를 하자. 그래야 끊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어간 인연인데!
그간 가을이 갔고, 벌써 겨울 한가운데 있다. 내 모습은 그대로인데 계절이 바뀌었고, 주변이 바뀌었다. 아, 그렇지. 몸무게가 좀 줄었다. 운동을 빠지지 않고 했더니 다소 몸이 가벼워졌다. 칠 년 전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받아 놓고 몇 번 입지 않았던 베이지색 니트를 거리낌 없이 입게 되었다. 더불어 핏(fit)이 엉망이었던 많은 겨울 옷이 오버핏 또는 핏이 맞게 되어 올 겨울엔 옷값이 굳게 될 예정이다. 꽃피는 봄이 오기 전까진 있는 옷들로만 믹스&매치해도 될 듯하다.
관심사가 하나 늘었다. 그래서인지 쓰는 것보다 보고 듣는 일에 시간을 할애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추가된 관심사를 쓰는 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도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일 텐데 벌써부터 그 중압감에 압도된다. 에이... 이 마음 또한 내려놓아야지. 숙제로 생각되지 않게 그런 마음이 생길 무렵이 찾아오면 그때 써야지.
오늘, 누군가의 '卒(졸)' 앞에서 글을 쓰게 됐다. 글로 남기지 않으면 마음속에 담아둔 감정은 곧 휘발되어 사라지기 마련이니 무조건 시간을 내기로 했다. 아침부터 조금씩 조금씩 써나가기 시작한 흔적, 흔적 안에서 의기소침한 옛 시절의 나를 만났다. 썼다 지웠다, 또 썼다 지웠다. 쭉- 쭉- 잇지를 못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과정이 어쩜 그 시절의 나를 생각나게 하던지. 순간 오장을 옥죄는 듯한 느낌에 잠시 현기증도 났다.
내일,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벌써 말이다. 눈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꼬꼬마였던 딸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볼이 빨간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육 년이란 시간이 이럴진대 육십 년도 얼마나 빠를까? 커가는 딸아이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영원히 곁에 있어줄 수 없음에 먹먹함이 서린다. 시간아, 천천히 흘러다오. 딸아, 천천히 커다오. 오랫동안 딸아이의 머릴 말려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어제, 어머니의 지인께서 하늘로 소풍을 떠나셨다. 향년 육십 세. 약 삼십여 년간 언니 동생 지간으로 연을 이어오셨으니 어머니가 받은 충격이 실로 컸으리라 짐작된다. 더욱이 사 년 전 돌아가신 울 아버지와 같은 병마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난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에 지금 안식원에서 편히 주무시고 계시는 아버지의 '생(生)', '졸(卒)'표식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보고 싶은 하루다.
어제 누군가의 '卒(졸)'은 이제 또 다른 세상에서의 시작이 될 것이고, 또 내일 누군가의 '卒(졸)'은 이제 또 새로운 세상에서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 사이에 오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