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 걷는 사람도, 뛰는 사람 그 누구도 지나간 여름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단지 불어오는 가을 냄새를 직접 맡을 수 없음이 애석할 뿐이다. 그럼에도 두 귀를 간지럽히는 가을 소리와 피부에 내려앉은 가을에 위안 삼는다. 후잉 – 휘잉 - 하고 이따금씩 들리는 가을바람, 땀에 젖은 머리칼이 이 가을바람 덕분에 간헐적으로 흩날렸다가 다시 이마에 내려앉은 것이 그렇다.
올해 봄부터 시작한 일과 후 건강 걷기도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았다. 이제는 건강 걷기가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건강 걷기가 이렇게 하나의 루틴(routine)이 된 데에는 건강 이상 신호가 한몫을 했다. 만약 적색경보가 발령되지 않았다면 과연 건강 걷기를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어림없었을 게다. 뚜벅이로서의 걸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
건강 걷기는 무거웠던 내 몸을 어느새 5kg 감량으로 바꿔 놓았다. 비록 아직은 멀었지만 원했던 몸무게를 달성하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다만 식습관 개선은 여전히 힘겹다. 당당하게 혀로 뱉은 말이 ‘단짠단짠’에게 아주 쉽게 농락당하고 만다. 별 수 없다.
아무튼 걷다 보니 짧게라도 남기고 싶은 세 가지 내용이 생겼다.
1만 보는 걸어야 한다?
1만 보 걷기 건강론을 1만 시간의 법칙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만 보는 걸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루 1만 보 걷기 건강론은 1960년대 초 일본 교수의 주장을 올림픽을 매개체로 한 기업 마케팅의 산물이었다.
1960년대 초 일본 규슈 보건대 ‘요시히로 하타노’ 교수는 일본 성인들의 비만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1만 부를 걸으면 평소보다 20 ~ 30%가량 칼로리를 더 소모할 수 있어 비만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를 받아들인 일본 '야마사(Yamasa)'란 제조 업체에서 걸음 수를 측정해주는 ‘만보계’ 제품을 기획하여 '하루 1만 보 걷기'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만보계는 1964년 도쿄 올림픽과 스포츠 붐을 타고 출시 첫해에만 100만 대 넘게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1만 보 걷기가 허수라는 말이 아니다. 꼭 1만 부를 걸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컨디션에 맞게 꾸준하고, 짧은 시간일지라도 빠르고 강하게 걸어야 운동 효과가 있다.
나는 일주일에 평균 5일을 걷는다. 저녁 식사 후 살림살이에 관한 일을 간단하게 마치면 보통 21시경에 걸음을 시작해서 주로 1시간을 걷는다. 기록 상 7,500여 걸음, 5.8 ~ 6km 거리, 약 300kcal를 소모한다. 여기서 파워 워킹은 대략 15분 내외다. 나머진 빠른 걸음과 산책을 강약 조절하며 걷는다.
일반 걷기 vs 파워 워킹
일반 걷기를 파워 워킹으로 생각했다.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파워 워킹은 일반 걷기와 달리기의 단점을 보완해 만든 운동이다. 일반 걷기가 체지방 소모율이 높은 반면 운동 강도가 약해 체력이나 근력 강화에는 부족하다고 한다.
시속 6 ~ 8km로 걷는 파워 워킹은 심폐지구력을 유지시키고 달리기처럼 많은 양의 칼로리를 소모하게 도와준다. 그래서 파워 워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파워 워킹은 체력 걷기(fitness walking), 건강 걷기(health walking)라고 부른다.
나는 주로 1시간을 걷는데 대략 25분 내외로 파워 워킹을 한다. 그런데 1시간 내내 파워 워킹을 하고 싶어도 세 가지 이유로 그럴 수가 없다.
1. 체력적 임계치가 확실함: 파워 워킹 25분 내외가 현재 내 체력의 보고다.
2. 사색할 여유도 필요함: 파워 워킹을 하면 확실히 걷는 데만 집중하게 된다.
3. 형편이 없는 박자 감각: 팔꿈치를 L자나 V자로 굽혀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다가 꼭 한 두 번은 같은 팔과 발이 나가게 되는데, 이럴 땐 스스로에게 너무 창피하다.
걷는 자세에 집중한다
건강 걷기 운동을 시작하고 알았다. 나만 빼고 걷거나 뛰는 길 위의 남녀노소가 천지삐깔이었다. 이 무리에 섞이는데 무려 사십여 년이 걸렸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따라서 ‘자세’에 좀 더 무게를 두기로 했다.
복부를 끌어당겨서 배에 힘을 주고 가슴과 등은 곧게 편다. 어깨에 힘을 뺀다. 턱은 끌어당긴 채 시선은 전방을 주시하는 자세를 계속하여 지탱하려 힘쓴다. 코로 들이마시면서 입으로 내쉬는 호흡법을 유지하려 애쓴다. 물론 자연스러운 호흡법도 문제없지만 평소 입으로 숨을 쉬는 습관 때문에 더욱 의도적으로 호흡법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저절로 익혀진 잘못된 행동 방식이 발목을 잡기 일쑤였다. 힘쓰고 애쓰지만 여전히 흐트러진 걷기 자세다. 물론 쉬이 바뀌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걸을 때마다 힘쓰고 애쓰고 있다.
오전에 코로나19 예방접종 2차를 마쳤다. 오늘부터 며칠 간 건강 걷기 운동을 포기해야 한다. 아직 특별한 후유증은 없다. 그러나 당분간 건강 걷기 운동을 하지 못해서 오는 후유증이 생길 것 같다. 끼니를 거를 수도 없고 끼니를 해결한 후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량 식품의 유혹을 어찌 견뎌야 할지… 막막하다.
지금 나를 향해 쩌벅쩌벅 돌진해 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점점 커진다. 곧 나를 추월할 것 같다. 환청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