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것도 잊고 있다가 엄마가 말씀하셔서 한 것이지만 어떻게든 몇 알의 열매라도 수확해보려고 했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녀석들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아버지 손 길과 정성을 따라가기에는 턱 없이 모자라네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내년에는 작년과 같이 몇 알이라도 수확에 성공해서 아버지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흥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완연한 겨울이 오기 전에 땅부터 손을 봐야겠습니다.
아버지!
오늘 당구는 어떠셨어요? 즐거우셨어요? 서예는요? 참, 요즘 V리그가 한창인데 잘 보고 계시죠?
아버지!
다른 것은 몰라도 아버지 일기에 아들과 당구 한 게임해서 좋았다,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이런 기록조차 없는 것을 보고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당구를 즐겨하지 않고 또 잘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못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본가 앞 5분 거리에 있는 당구장에 가서 딱 1시간만 있다 오면 될 것을 그것이 뭐가 그리 어렵고 생각 못할 일이라고.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꼭 당구가 아니더라도 아버지와 단 둘이 보낸 시간도 거의 없었다는 것도요.
쉰에 은퇴한 사람들은 모두 아이들과 탁구나 치면서 지내고 싶은 시간 여행자라고 생각해 영화 <어바웃 타임>
극장에서 볼 땐 몰랐는데 아버지 일기를 읽고 생각난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극 중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이 있는데요. “쉰에 은퇴한 사람들은 모두 아이들과 탁구나 치면서 지내고 싶은 시간 여행자라고 생각해” 아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마음이 전과 다르게 제 마음을 뒤 흔들었습니다. 6년 전 극장에서 봤을 땐 기억조차 없던 이 대사가 말이죠.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아버지처럼 극 중 아버지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아들의 어린 시절로 말이죠.
아버지, 같이 산책 가실래요?
내 아들
내 아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뭐하고 싶으신 거는요?
글 세다. 한 가지 있긴 한데 잠깐 산책 좀 했으면 좋겠다. 완전히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우리만 조심하면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산책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