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15화

시그널(signal)

by 리얼라이어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올해 들어 첫눈이 내렸다. 가지마다 그리 많지 않은 하얀 눈이 나뭇가지에 소복이 내렸다. 청춘은 아니어도 가슴 설레는 흐뭇한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은 설렘을 느껴본다. 자연은 이렇게 되돌아오는 법칙인가 보다. 정말 기분 좋은 첫눈이었다. _ 2016년 11월 26일 토 흐리고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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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과 2017 년의 갈림길. 이제 불과 몇 시간(6시간) 후면 또 한 해가 바뀌어진다. 새해 2017년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서글퍼지기도 한다. 왜 이리 세월이 빠르단 말인가? 새해엔 더욱 건강에 주의하고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되겠다. 온 가족 무탈하고 아들 내외 가족 정말 건강하고 하는 일 모두 순탄하게 잘 풀렸으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딸내미 내년엔 갈 수 있는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내년에 정말 정말 좋은 일 만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면서 2016년이여 역사 속으로 아 – 듀 _ 2016년 12월 31일 토 맑음


아버지 인생에 마지막 겨울이었다. 2016년 겨울에 내린 첫눈의 설렘은 다음 해에 다시 느낄 수 없게 됐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소망을 비는 이의 간절한 마음 또한 2017년 12월 31일에 담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국내 노년층 아니 현대의 성인남녀라면 모두 조심해야 하는 질병 때문에 식사 조절, 걷기, 자전거 타기, 금연, 절음을 실천하고 계셨다. 2016년 일기에도 적혀 있듯이 몸 상태가 평소와 다름을 느끼면 어김없이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고, 처방전에 있어서 만 큼은 실천을 게을리함이 없었다. 또한 아버지가 걱정한 질병에 좋지 않았던 예후도 없었다. 그런데…


사고가 아니고서야 사람은 한 가지 질병으로 의해 사망에 이르지 않는 듯하다. 특히 암은 말이다. 물론 아버지가 걱정한 몇 가지 질병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돌이켜 보니 아버지의 병마는 그렇게 얽히고설켜 조금씩 조금씩 아버지의 몸을 좀먹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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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다가 아침밥을 해 먹지 못해 남은 빵과 우유 그리고 사과를 먹었는데 운동을 하고 난 후 당 체크를 해 보니 이게 웬일 314로 엄청나게 높은 수치를 보였다. 빵 안에 크림이 있어 이게 아닌데 하고 먹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이 적중하고 말았다. 오후에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이상스러울 만치 가벼운 워킹이었다. 기쁜 마음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역시 꾸준한 운동만이 살길이야. _ 2017년 3월 4일 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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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니 근심이다. 병원에서 당 조절 문제로 약을 하나 더 추가한다는 의사의 말에 내심 걱정이 크다. 정신 차리고 식단도 조절하고 야채를 많이 먹으란다. 기분이 좋지 않은 하루이면서 복지관을 하루 쉬었다. _ 2017년 4월 7일 금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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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훅훅거리고 순간순간마다 어지러움을 느낀다. _ 2017년 5월 6일 맑음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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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덕 지근한 날씨 그리 기분은.. 혈당을 체크했는데 117. 어저께는 304 뭐 이렇게 들락날락하는지. _ 2017년 7월 29일 토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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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이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대화의 주된 언어는 매일 아파 죽겠단다. 늙으면 찾아오는 갖가지의 병마. 수긍하면서 긍정적으로 그러려니. 인생은 다 그런 것 아니겠어? _ 2017년 9월 6일 수 비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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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 00으로 병원에 가서 피를 뽑고 진료를 받았다. 부작용의 유무를 기리기 위해 혈액 채취를 하였는데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단다. 3달치 약 값이 37,600. 비싸다. 평생을 안고 가는 병인데… _ 2017년 9월 7일 목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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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더운 하루였다. 아침 기온은 아주 서늘하고 한기를 느끼지만 대낮의 기온은 한 여름이다. 몸이 좋지 않음을 느낀다. 엊저녁엔 갑자기 배가 고프고 혈당이 떨어져 새벽임에도 정신없이 과자 두 개를 먹었다. 그랬더니 온 몸이 제정신을 찾는다. 예전엔 없던 일이었는데. _ 2017년 9월 8일 금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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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집사랑 생일을 당겨서 닭갈비 집에서 조촐한 생일 파티를 하였다. 좋아하는 닭갈비였는데 좀처럼 당기지 않아 조금 먹고. 집 사람이 좋아하는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좋은 저녁 식사였다. _ 2017년 9월 9일 토 맑음


아버지의 일기를 거꾸로 읽기 시작하면서 몇 장 넘기지 않아 본 2017년 9월 9일 일기. 그래. 그 날 아버지께선 정말 거의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양념된 닭갈비에서 비린내가 난다고도 말씀하셨는데 단 한 번도 아버지께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비린내라니. 엄마께서 말씀하시길 아버지가 늦은 점심을 드셨기에 시장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적당히 드시라고 했다. 한참 드셔야 할 그때 젓가락을 놓으셨다. 술잔도 더 이상 비우지 않으셨다. 그래도 가족 모두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일기를 거꾸로 읽어 나가면서 알았다. 이것이 모두 병마가 보낸 어둠의 시그널(signal)이었음을. 아버지도 엄마도 우리 가족 모두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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