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추석은 이례적으로 연휴가 매우 길었다. 무려 열흘 정도. 이렇게 긴 연휴가 얼마나 야속했는지 모른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 서울대병원과 서울 삼성병원을 찾았다. 처음 가본 암병원. 그리고 많은 암환자와 암환자 가족들을 처음 본 그 기분이란. 낯설었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으며 묘한 동질감과 애틋함도 느꼈다. 겉으론 모두 건강한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서로를 바라보는 눈 빛 만 큼은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했다. 그래도 암병원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으니 그 무거운 공기에 얼른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평생 명절을 지내지 않은 경우는 내 결혼을 앞둔 그 해 추석이 유일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이번 추석도 예외가 되어야 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친척과 아버지 친구 그리고 친지가 다녀가셨다. 첫인사와 끝인사는 모두 눈물로 시작하고 눈물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덤덤하게 계셨다.
오랜만에 한가로운 명절을 보내게 된 엄마는 차례 음식이 아닌 아버지를 위한 식단 준비로 추석 아침을 맞이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안쓰럽고 미안했던지 아버지께서는 단 한 번도 거실로 나오지 않으셨다. 이내 엄마는 근처 수목원으로 산책 갈 것을 제안하고, 얼마 전 아버지의 겨울나기를 위한 새 옷 가지를 꺼내어 라벨을 떼어 내셨다. 아버지가 근무한 시골학교에서 근처 어딘가에 돗자리를 펴고 백숙을 뜯어먹던 내 어릴 적 사진 한 장과도 같았던 추석 날 오후.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운 아버지는 손녀의 노랫소리에 흐뭇해하셨다. 한데 며칠 새, 아버지의 두 눈과 얼굴이 몰라보게 노랗게 된 것이 아닌가. 놀란 내 모습이 아버지께 들킬까 무서워 잠자리를 잡으러 가자고 딸아이에게 말했다. 아내와 여동생도 함께 동행했다. 얼마를 가다 뒤돌아 보니 엄마께서 아버지 볼에 입을 맞추고 계셨다.
그날 밤 달님에게 빌 소원은 이미 정해졌다. 달을 보며 이토록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던 적이 있었나 싶고, 달을 보고 그토록 울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달은 말없이 그저 쟁반 같이 크고 태양만 큼 빛나는 자태만 뽐내고 있을 뿐이었다.
1년처럼 길게 느껴진 추석 연휴가 드디어 끝이 났다. 사람들은 저마다 직장으로, 일터로 가는 시간에 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서울 삼성병원을 찾아 항암치료를 위한 마지막 검진을 받았다. 이미 수술은 의미가 없었기에 병마와 긴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첫 단추를 꿰기 위해 1박 2일간의 입원 날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모습이 지난 며칠 전 보다 더욱 수척해져 보였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이제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셨다. 말씀도 많이 줄었고 가끔씩 넋을 잃고 계셔서 엄마의 핀잔 소리가 자주 귀에 들렸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면서 눈을 크게 뜨려고 안감힘을 쓰듯 가족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쓰셨다. 그 모습에 모두 아버지 몰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10월 13일 금요일. 1박 2일이면 될 조직 검사를 위해 가족 모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겨우 1박인데 아버지께서는 전기면도기를 챙기셨다. 그래, 더 이상 수척해 보이기 싫으셨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면도날을 청소한 후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조수석에 탄 여동생도, 뒷좌석 두 분도 특별한 말 없이 모두 운전하는 것 마냥 정면만을 응시했다. 라디오라도 틀을 까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아버지께서 엄마 무릎을 베고 싶다 하셨기 때문이다. 난 조금 더 안전하고 천천히 운전하는데 집중했다.
개인적으로 이 날부터의 기억은 모두 아리고, 쓰리고, 눈물겹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의 비정상 속 평온함은 이 날이 마지막이었다. 모든 것이 이 날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당신의 차도 더 이상 탈 수 없었다. 아버지는 두 발로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내의 무릎베개도 더 이상 밸 수 없었다. 가장 슬픈 일은 더 이상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날 집을 나선 아버지의 발걸음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거짓말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 같은 비극. 이 새빨간 거짓말 같이 찾아온 비극은 아버지의 병명을 알았던 2016년 9월 20일로부터 딱 한 달이 되는 날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 겨우 한 달만이었다. 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