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18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by 리얼라이어

다음 날 퇴원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마음 편하게 서울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하룻밤은 엄마와 여동생이 아버지의 보호자로서 곁을 지켰다. 그리고 이날의 내 미션은 다시 아버지를 모시고 안전하게 집으로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퇴원은 없었던 일로 결정되었고, 응급 상황을 위한 스탠바이 가 진행 중이었다. 이유는 불안정한 호흡이었다. 내가 두 다리 뻗고 잘 때 엄마와 여동생은 간 밤에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치도록 쿵쾅쿵쾅 뛰었다.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모녀는 한 숨도 못 잤을 거라 판단하고 얼마 동안이라도 내가 아버지 곁에 있기로 했다. 잠시 뒤, 아버지께서 아주 작은 목소리와 힘에 겨운 손짓으로 날 부르셨다. 어쩔 수 없이 엄마를 호출했다.


결국 이날은 나 혼자 집으로 가야 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세면도구 외 여벌의 옷 가지를 챙겨 오지 못한 엄마께서 메모와 함께 몇 가지 부탁을 하셨다. 여동생 또 한 혼자 있을 엄마와 지난밤 일이 걱정이 돼 잠시 생업을 접고 병원에 남기로 했다. 그런 여동생도 나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차에 올라타서도 한 동안 시동을 걸 수 없었다. 한 30분이 지났을까? 예후가 좋지 않아 며칠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눈두덩이가 너무 아파옴에 일단 차에서 내렸다.


10월 15일 아침. 암병원에서 창문 너머로 본 세상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실내로 눈을 돌렸다. 복도 끝에서 끝까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걸어 다니는 암환자도 자기 길을 꿋꿋하게 가고 있다. 어제 의사가 항암 치료도 혼자서 걸을 수 있는 체력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기에 이 복도를 걸어 다니는 저 환가 아버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때였다. 복도 어디선가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상보다 전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어머님.


암세포가 예상보다 빠르게 다른 장기로 전이되고 있는 상황을 환자의 보호자에게 전할 수밖에 없는 의사도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자신의 말 한마디에 보호자의 희비가 엇갈림을 하루에도 수 없이 보고 겪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단어, 말투, 말맛에 왠지 모를 고마움과 함께 짠한 감정도 들었다. 리스너(listener) 한테 들을 법한 입격(格)을 스피커(speaker)에게 들었던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랬다. 전이 탓이었다. 아버지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호흡이 불안정하여 위급한 상황에 놓인 지난밤 일 모두가 미친 듯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암세포 때문이었다. 이제 항암치료도 소용없게 됐다. 의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버지의 시계는 3개월에서 6개월로 맞춰진 시한부 삶이 되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평생을 곁에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가 시한부 삶이라니. 이만저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엄마는… 엄마께서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가엾은 우리 엄마. 복도 저 끝까지 엄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복도를 걸어 다닌 아까 그 환자분이 잠시 걸음을 멈추다 이내 걷는다.


10월 18일 저녁. 일을 마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틀 전 아버지는 일반 병실로 옮겼다. 6일째 남편 곁에서, 아버지 곁에서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은 두 모녀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늘진 모습을 보이질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두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상당한 부채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런 날 보고 여동생이 말했다.


그런 말 마. 엄마와 나. 오빠 덕분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야.
오빠는 존재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힘이 되니까 그런 생각하지 마.


의사 말에 엄마가 오열을 했어도, 숨 쉬기 조차도 고통스러운 아버지를 보고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여동생의 말 한마디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간 나도 알게 모르게 고독한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암환자의 병실은 고적하면서도 특유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모두 같은 처지, 같은 마음,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아버지께서는 거친 숨을 내쉬고 계셨다. 그래도 아들이 와서 기쁘고 반가운지 엄마에게 부축해달라는 신호를 보내셨다.


아이고. 아버지! 저예요, 아들!


아버지께서 힘겹게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곤 내 볼에 입 맞춤을 하신 후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소리가 너무 작아 아버지의 입 모양을 보고 알아차렸다.


밥… 밥…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다시 자리로 누우셨다. 모레, 드디어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은 춘천으로 돌아온다.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워 집이 아닌 병원에 잠시 머문 뒤, 사설 호스피스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시기로 가족 모두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세 사람이 춘천에 도착할 때에 맞춰 합류하기로 했다.


아버지, 모레 춘천에서 봐요.
힘드셔도 식사는 꼭 하시고요!


아버지가 나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셨다. 그것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 마지막 엄지 척이었다.


10월 20일. 아버지께서는 아내와 딸 그리고 처남댁 앞에서 영원히 잠드셨다.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향했지만 이미 15분 전에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평온했다. 내가 아는 아버지의 얼굴 그 모습처럼 말이다. 아버지 귀에 속삭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지!


관찰실에서 나와 아버지가 머물던 병실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물건을 하나 둘 정리하는 중에 아버지 맞은편에 자리한 환자의 보호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괜찮으시대요? 춘천 가실 수 있대요?


… 네.
며칠 밤 동안 신세 많이 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때론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감히 내가 그들의 희망을 꺾을 수는 없다.


아버지와 가족의 물건을 챙겨 병원비를 수납하러 갔다. 직원 분이 위로를 해줬다. 고마웠다. 그리곤 아버지의 사망 진단서 열 장을 요청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종이가 내 손으로 건네 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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