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년이 흘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조용하고 쓸쓸한 공기는 한 동안 지속됐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일부러 밝은 척하지도 않았다. 가족 모두 슬픔을 애써 감추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누가 눈물을 보이면 다 같이 눈물을 흘렸다.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것. 울고 싶을 땐 참지 않고 우는 것. 이것이 오히려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
본가 거실에는 여전히 우리 내외와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함께 찍은 결혼식 사진이 걸려 있다. 사위가 들어오면 개봉하겠다고 한 아버지의 위스키도 진열장에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아버지의 자전거도 마당에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엄마의 잔심부름용으로 여동생이 가끔 탄다고 한다. 마당에는 아버지가 가꾼 식물이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본가에 들를 때마다 식물 앞에 서서 아버지 흉내를 내어 보지만 녀석들에게 면목이 없다. 아버지의 차는 엄마의 애마로서 여전히 당당하게 집 앞에 서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계셨을 때처럼 여전히 주말에 모두 모여 식사 시간을 갖는다. 달라진 것은 오직 곁에 안 계신 아버지, 남편, 할아버지일 뿐이다.
반면에 전과 다른 풍경도 생겼다. 엄마께서는 홀로 맞는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생일 아침에 아버지 생각에 많이 우신다. 부부동반 모임에는 가는 일이 없게 되었고, 어디 멀리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버스를 탄다. 그래도 여전히 바쁜 생활을 하고 계신다. 본가에 여동생 방이 생겼다. 주말마다 귀성하는 여동생의 오피스로 쓰인다. 이 방은 아버지께서 서재처럼 쓰셨던 곳이다. 나는 아버지를 대신해 제주가 되었다. 아직도 예를 갖추는데 어리숙하다. 아내는 이전보다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많이 드린다. 딸아이의 일기엔 할아버지의 대한 그리움이 때때로 등장한다. 모두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의 빈자리로 일어난 가족 각자의 모습이다.
가족은 철마다, 때마다, 보고 싶을 때마다 남편이,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안식원을 찾는다. 얼마 동안은 그저 울다 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웃기도 하고, 얘기도 하고, 바라는 일도 거리낌 없이 말하게 됐다. 언제 한 번은 엄마가 경품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아버지께 말했더니 살아생전 경품 1등에 당첨되지 못한 아쉬움을 씻고 싶으셨는지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것도 엄마가 원했던 경품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도 로또를 가지고 아버지를 찾았다. 평소 5등에 당첨되는 일은 다반사이거늘 어째 단 하나의 숫자도 맞지 않았다. 괜한 생각 말고 부지런히 살라는 아버지의 메시지 인가보다. 딸아이가 위로하며 말했다. 아마도 할아버지께서 곤히 주무시다 아빠 얘길 못 들으셨나 보라고. 재미있는 녀석이다.
이전과 다른 풍경과 때론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이전과 같은 풍경과 일상 안에서 우리 가족이 공통으로 깨달은 점 하나는 역시 '가족의 소중함'이다. 가깝고 늘 곁에 있어서 잘 몰랐다. 꼭 이렇게 큰 일을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인지 씁쓸한 노릇이지만 그나마 더 늦지 않고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유산이 아닐까!
이 글은 은퇴한 우리네 아버지의 보통적인 일상이자 아무도 모를 혹은 비밀스러운 비망록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아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바람이 있다면,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부디 지금 그대들 곁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족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만큼 의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