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21화

소소한 기쁨, 소소한 행복

외전(外傳) 2

by 리얼라이어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하늘이 맑지 못하고 잿빛이어서 운동할 맛도 없고 하루속히 미세먼지가 걷혀야 되는데. 오늘 아들 며느리와 딸 그리고 내외가 모여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더욱이 오늘 점심은 누가 사느냐에 가위, 바위, 보를 하였는데 그 결과 내가 1등, 딸 녀석이 꼴찌를 하여 한바탕 웃음과 함께 딸 녀석이 쏘았다. 한방에 이겨버린 것이다. 딸과 아내가 보자기, 나는 가위. 깨끗이 정리를 하였다. 이어서 벌어진 딸과 아내와의 승부. 보를 낸 딸내미가 가위를 낸 아내에게 맥없이 져버려 승부가 일찍부터 결정 났다. 매우 맛있는 음식이었다. _ 2016년 4월 10일 일 흐리고 맑음


본가와 처가가 모두 춘천에 있으니 가족끼리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쉽게 만날 수 있으니 나서는 길이 힘들지 않음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 한 번도 명절날 고속도로 정체를 경험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 날도 정기적인 가족 식사 자리였는데 평소에 우리 내외가 값을 치른 적이 많다며 이번만 큼은 아버지, 엄마, 여동생이 내기를 하여진 사람이 값을 치르겠노라고 하셨다. 아버지 일기에서처럼 아버지가 1등을 하셨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내 딸아이와 비슷하던지. 얼굴은 이미 기쁨에 사로잡혀 입 꼬리가 한없이 올라갔는데 미안한 마음도 있어서 그 기쁨을 애써 참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결국엔 여동생이 내기에 져서 가족 모두 한 바탕 웃었을 때 그제야 감췄던 기쁨을 큰 웃음으로 표현하셨다. 아버지에게 가족과의 식사 자리는 소소하지만 큰 기쁨과 행복이었음을 일기 곳곳에서 알 수 있었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00에 살다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도 그렇게 흔하지 않을 듯. MS 마트에서 경품을 추천하였는데 2등에 당첨되어 제습기 250,000짜리 한 대를 받았다. 00 이와 함께 참석하여 이런 행운을 누렸는데 둘 다 입꼬리가 하늘로 치솟을 듯 너무나 기뻤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당첨 소식을 알렸는데 당신이 어저께 생일이라 생일 덕을 본 것이 아니냐며 함께 기뻐하였다. 살다 보니 이런 행운도. 큰 처남댁에서 오늘 교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불러 생각이 많이 났다는 처남의 말에 가슴이 찌릿함을 _ 2016년 7월 31일 일 맑고 비


로또 5등도 단 한번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고 하셨던 아버지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왔으니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당첨된 스토리는 이미 당첨된 이후 가족 식사자리에서 들었다. 말씀 중에 얼마나 흥분을 하시던지 결국 여동생이 이야기를 끌어 갔다. 그리고 며칠 뒤 경품 추첨이 또 있는데 이번에는 꼭 1등으로 당첨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경품 추첨에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셨나 보다. 그 뒤 아버지 일기에 경품과 당첨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도 본가에 그 제습기는 엄마께서 잘 사용하고 계신다. 가끔 본가에 가면 이유도 없이 제습기 전원 버튼을 눌렀다 끈다. ‘아버지, 저희 왔어요.’ 하고 인사드리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께서 그런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계속 틀어놔.
아버지 기뻐하시잖니.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마지막 무더위 말복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위도 물러가겠지.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니 기분도 매우 상쾌하고 5년은 젊어 보이는 듯하여 기분이 땡~ _ 2017년 8월 11일 금 맑음


젊은 시절 머리숱이 어마 어마했다는 아버지. 내가 본 젊은 시절 사진 속 아버지는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민머리 걱정은 절대 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그래도 세월에 장사 없음에 아버지도 이를 비껴가지는 못했다. 물론 시원한 민머리는 아니셨다. 다만, 적은 머리숱 때문에 바람이 부는 날 아버지의 머리는 늘 아슬아슬함을 연출한다. 그런 아버지가 머리를 자르고 염색까지 하는 날에 일기는 비슷하다. 여자나 남자나, 젊든 나이가 들었든 이발과 염색은 그 날의 분위기를 들었다 놨다 하는 듯하다. 5년은 더 젊어 보인다는 아버지의 감정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음을 짐작해 본다.


복 날이라고 아버지께 그 흔한 삼계탕 드시러 가자고 단 한 번이라도 말씀드렸던 적 있었나 생각해 봤지만 기억에 없다. 그나마 여동생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주말마다 본가에 갔으므로 삼복 중 한 번은 챙겨드렸으리라. 나는 무심한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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