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20화

아아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외전(外傳) 1

by 리얼라이어

아버지의 일기에서 눈에 띄는 내용 중 한 가지가 바로 태극기다. 현충일,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등 경축일은 물론 조의를 표하는 날에는 태극기와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 등장한다. 내용 상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생각해보면 아버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어서 읽으면서 웃음이 툭 터져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일부러 찾아 나선 아버지의 행동이 참으로 엉뚱하지 않은가. 볼 일이 있어서 나간 것도 아니고 마치 산불감시원처럼 동네 여기저기를 살피고 다니셨으니 말이다. 만약 우리 집이 본가 근처에 있었다면 아마도 아버지한테 당장 전화가 왔을 것이다. 나도 그동안 국기를 게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순간 크게 꾸짖을 아버지가 그려진다. 혀끝을 차며 국기가 게양될 때까지 지켜보시겠지. 다시 한번 전화가 올 것이다.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학교에서 안 배웠냐며 ‘현중일이다, 이 놈아!’ 하실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제62회 현충일. 호국 영령에 대한 숭고한 마음과 고마움을 갖는 날이다. 그럼에도 태극기를 달고 숭고한 정신을 갖고 그에 따른 존엄성을 가진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자전거를 타고 동네는 물론 장학 초등 주위를 살폈지만 서너 집을 발견했다. 실망이다. 아파트는 물론 개인 주택에 태극기의 물결을 볼 날은 언제가 될까? 참 멋있을 텐데. 혼자만의 생각이다. _ 2017년 6월 6일 화 흐림
오늘이 97주년을 맞이하는 3.1절이다. 아침에 태극기를 걸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더니 내 눈에 들어온 태극기 게양 집은 15집. 우리 동네의 현주소이다.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공휴일이라 왜 쉬고 있는지를 모르는 국민들이 더 많으니 이를 어쩌랴. _ 2016년 3월 1일 화 맑음


최근 실시간 검색어로 ‘유준상 태극기’가 한 동안 화제였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펀딩 동참은 물론 홈쇼핑으로 태극기함을 필히 구입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입은 한 개가 아니라 세 개를 했을 것이다. 한 개는 본가에, 또 한 개는 딸에게, 마지막 남은 한 개는 손녀에게 선물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흐뭇하고 뿌듯한 미소가 내 눈 앞에 절로 그려진다. 아버지 눈망울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담겨 있겠고.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어느 한 지역도 아닌 적국적인 심한 가뭄에 6시 내 고향이 전국 가뭄에 실태를 낱낱이 보도함에 정말 가뭄이 이렇게 심할 수가? 한심스럽다. 이렇게 된 가뭄을 누가 만들고 말았을까 묻고 싶다. 내일은 조금이나마 비가 내린다니 하늘이시여 제발 대한민국 전국에 비가 내려 주옵소서 _ 2017년 6월 5일 맑음
연일 찜통더위다. 경주의 날씨가 어제는 39.7도였단다. 이웃 중국 선양지역 40도. 그 외 지역이 42~3도를 오르내린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에 못지않게 상승되어 가는 온도가 많이 염려스럽다. _ 2017년 7월 14일 금 맑음
어제의 찜통더위에 이어 오늘은 국지성 호우로 한바탕 기온이 서늘해져 지낼만한 날씨로 변하였다. 이런 날씨는 우리나라뿐이 아닌 세계의 날씨가 우리에게 혼동을 준다. 폭우로 때로는 가뭄으로 그리고 대형 산불로 믿기지 않는 변덕 날씨에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_ 2017년 7월 15일 토 흐림


일기의 특성상 오늘의 날씨를 기입하고, 때론 그 날의 날씨가 주된 내용이 되기도 한다. 맑음, 흐림, 비, 눈, 안개, 황사, 먼지, 태풍, 바람 외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느끼는 감정, 다채로운 풍경, 얽힌 에피소드는 일기와 같은 수필 문학 장르에서 글의 주제 또는 소재로서 쉽게 쓰이게 마련이다.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SNS에서도 날씨 얘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타인과의 첫 만남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희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주제도 날씨다. 또한 안부 인사로서 날씨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렇듯 아버지의 일기 또한 일상의 주요 주제 또는 소재로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날씨다. 다만, 특징이 하나 있다면 발췌된 일기처럼 날씨에 관한 염려스러움의 내용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이다. 그 염려스러움은 우리나라를 넘어 지구촌까지 뻗어 있다. 처음 일기를 읽었을 때는 ‘뭘, 이런 것까지 사서 걱정하셨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두 번 읽었을 때 떠오른 아버지 말이 생각났다. 내가 군에 있었을 때, 아버지께선 시골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계셨었다. 그 해도 꽤나 가뭄이 심했었는데, 어느 날 군인들이 대민 지원을 나와서 고생하는 모습에 아들 생각이 났다고. 더욱이 계급이 낮을수록 선임 눈치 보느라 쉴 때도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아, 아들 녀석도 저러고 있겠구나’ 하셨단다. 그때 또 어디론가 향하는 군인을 봤는데 태양이 이글거리는 날씨에 육공 트럭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을 목격하고 차 에어컨을 바로 껐다고 한다. 이 얘기를 아버지한테 들었을 땐 깔깔거리며 웃었는데 돌이켜 보니 아마도 일기 내용처럼 그 날을 계기로 아버지 시선에는 가뭄, 태풍 피해, 기후변화 뉴스가 남다르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글 © 순 구 | 사진 © 슬로우 스타터
박근혜 대통령 헌재에서 탄핵 (8인 전원 결정) 박 대통령이 헌재에 의해 탄핵 결정되었다. 탄핵 즉시 대통령의 직을 잃고 일반인으로 돌아갔으니 아~ 오호통재라.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정말 한국의 슬픈 날이 아닐까? 법 앞에 평등함을 보여준 민주주의의 표본을 보여준 큰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_ 2017년 3월 10일 금 맑음
박 대통령이 새벽 4시 45분 서울 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파면 뒤 3주 만이다. 왕 같은 대통령, 예고된 비극이라는 조선일보의 1면 활자. 헝클어진 대통령의 모습에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 대한민국 어디로 가지나이까? _ 2017년 3월 31일 금 비
오늘이 불기 2561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각 사찰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대선 주자들의 합장하는 모습이 뭔가 처량(?) 함은… _ 2017년 5월 3일 수 맑음


대한민국 어느 가정에서든 금기 시 되는 화제가 있다면 그중 하나가 정치 얘기일 것이다. 세대 간 시선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정치 얘기야 말로 가급적 가족 안에서 쉬쉬하는 편이 좋다는 분위기다. 부모 자식 간 서로의 정치 성향이 같을 수야 없겠지만 상반된 색깔일 경우, 웃으며 시작한 얘기가 서로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만다. 특히, 명절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른들이 정치 얘기에 열을 올릴 때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현명하다.


이 얘기는 아버지와 내 얘기이기도 하다. 정치 얘기로 아버지와 사소하게 말다툼까지 한 적도 있고,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경우도 많았다. 때문에 아버지 일기 속 정치와 관련된 문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광화문 촛불 혁명에서 비롯된 정권교체에 한 없이 기뻐한 나인 반면에 아버지는 참담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었음을 가족 모두 잘 알고 있었기에 당시 우리 가족은 이와 같은 현 시국을 저녁 식사에서의 화제로 삼을 수 없었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 아버지 일기에는 심심치 않게 현 정권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담겨 있다. 단면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글씨체다. 어떤 감정이었는지 잘 드러나 있다.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높은 사람 앞에 아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아버지 일기 속에 이틀 연속 등장하는 한자성어다. 당신께서 그토록 편애한 정권이자 대통령이었어도 이 한자성어에 아버지의 진심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한다. 법이 모든 이에게 하나의 잣대로 변함없이 적용되어 다스려지는 것이 한비가 생각한 이상적인 법치국가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국민이 바라는 대한민국도, 아버지가 바라는 대한민국도 모두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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