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순 구 16화

나는 암환자 가족이 되었다

by 리얼라이어

매거진의 첫 화수, 첫 부분에 언급했듯이 아버지의 일기는 2017년 9월 16일 토요일이 마지막이었다. 그 흔적은 단 네 글자, 무료하게. 네 글자가 전부였고 다음 날은 벌초였다. 병마도 더 이상 숨어 지내기가 답답했는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벌초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포기를 선언하셨단다. 그늘 진 곳에서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면서 앉았다가 누워 있다 여러 번 반복하며 축 늘어진 몸을 추스르는 모습이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고 한다. 나는 그 해 벌초에 참석하지 못했다. 두고두고 후회한다.


벌초 다음 날, 오후에 엄마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는데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으셨다. 별 일 없다고 하셨지만 혹,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이 있었는지 빠르게 회상했건만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었기에 돌아오는 주말에 찾아뵙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목요일 밤 11시 십 여분이 지난 시간. 춘천행 경춘선 마지막 열차가 문을 닫고 출발할 때 즈음 한 통에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이 시간에 엄마가? 단 한 번도 이 시간에 엄마한테 전화를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뭔 일인가 싶었다.


예, 엄마. 저예요.
근데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시고.


늦게 까지 고생이 많다는 말로 말문을 여셨다. 여전히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자리에 일어나 전철 맨 마지막 칸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흐느끼는 목소리와 함께 자초지종을 들으며 걷는 내 발걸음은 그야말로 천근만근이었다.


아들!
내일 아버지 보면 한 번 꽉 안아 드려.
알았지?


담배가 너무 생각났다. 하지만 경춘선이 춘천에 도착할 때까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와 전화를 끊은 후 차례로 여동생과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명히 엄마한테 자초지종을 다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정말로 난감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에 마지막 검사와 함께 오전 중으로 검진 결과가 나온다 하여 일찍부터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이미 마지막 검사를 끝내고 여동생과 함께 병실로 들어온 아버지와 마주쳤다. 바쁜데 뭘 여기까지 왔냐는 듯 아버지는 아들의 안부부터 물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병실로 들어온 나는 아버지 손이 조금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우리 아버지 한 번 안아봐야겠네.
언제 안아 봤더라?!


이미 난 목구멍까지 뜨거워져서 아버지를 얼른 안지 않으면 안 됐다. 아버지는 마치 어린 딸아이가 아빠한테 꼭 안기는 것처럼 그렇게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따뜻했다.


아들, 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한 동안 아버지와 나는 꼭 안고 있었다. 이미 아버지께서는 눈물을 많이 흘리고 계셨다. 그 눈물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눈물이 될 줄은 몰랐다. 저 바깥은 평온한데 이 안은 불안한 공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검진 결과 담도암 4기. 담도암은 담즙이 간에서 십이지장까지 가는 경로, 담도(담관)에 발병하는 악성종양을 말하는데, 그 발생 기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든 암이라는 소리에도 심장이 내려앉고 마는데, 이미 4기라고 하니 가족 모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 잡힐 수밖에 없었다. 모두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아버지만 큼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저 엄마 손만 꼭 꼭 잡고 계실 뿐이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그 날로부터 암환자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아버지 앞에서 절대 울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다.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손을 씻다가도, 잠자리에 들다가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집에서는 아내가 말없이 나를 꼭 안아 주었고, 딸아이는 내 볼에 자주 입맞춤을 해주었다. 분명 엄마도 아버지 곁에서 말없이 그저 꼭 안아드렸으리라.


암환자와 암환자 가족. 모두 어두운 긴 터널 한가운데 놓여 있는 그야말로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슬픔에 찬 사람이자, 그럼에도 한 줄기 빛을 찾아 나서는 모험가다. 매일이 아슬아슬 외줄 타는 심정과 참기 힘든 고통이 따르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에 오늘도 힘을 낸다. 헛헛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조차 안쓰럽고 미안하지만 잠자리에 들 때 서로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얼마나 이것을 반복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가장 공포스럽다. 나는 말기암 환자 아버지를 둔 암환자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에게 비극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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