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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글쓰기'의 공통점

올해 들어 꾸준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 더 생겼다

by 리얼라이어

어떤 이는 퍽퍽한 자신의 삶을 고르고 정리하기 위해 800km가 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애써 걷거나 또 어떤 이는 400km가 넘는 제주 올레길을 애써 찾아 걷는다. 완주한 사람들이 말하길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펴지는 경험을 했다고.


그런데 이렇게 애써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우리 주위엔 가깝고, 풍경도 좋으며, 잘 닦긴 공원 수변 산책길과 하천 길 그리고 고즈넉한 볼거리가 있는 둘레길, 숲 길 등등 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자 야고보를 찾아가는 '신앙의 길'이 주는 숭고함, 제주의 자연 특성과 결합한 '치유의 길'이 주는 위로가 우리 주변의 일상적 길과 같을 순 없다. 하지만 '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같다. 사색과 깨달음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 꾸준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 더 생겼다. 걷기다. 글쓰기와 더불어 걷기를 시작했다. 3주 차에 접어든 걷기가 이제 제법 몸에 익었다. 몸의 무게도 벌써 1.5kg 줄었다. 비록 건강검진을 계기로 시작한 걷기지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라는 다소 막연한 목적 아래 하나 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나가니 걷기가 '꾸준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됐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가 설레발치지 말라고 한다. 겨우 3주 차인데 부산하게 굴지 말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앞으로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면서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럼에도 3주라는 시간은 만족감, 자랑스러움, 자부심과 같은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지금처럼 '꾸준하게 최선을 다하는 걷기'를 유지하면 아내의 핀잔을 들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걸으면서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보다 늘었다. 때에 따라 무념으로 1시간여를 걷기도 하지만 이젠 걷는 시간이 곧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그러다 며칠 전 '걷기'와 '글쓰기'의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먼저 돈이 들지 않는다. 장비를 사야 하고, 회원권을 끊어야 하며, 상대와 내기를 하는 여타 운동과는 다르게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누구나 운동화 한 켤레와 홈 웨어 한 벌 쯤은 있을 테니 말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브런치와 같은 글쓰기 플랫폼 외에도 블로그, SNS에 긴 글, 짧은 글 올리는데 비용은 들지 않는다. 잘만 쓴다면 오히려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의지만 있다면 당장 시작할 수 있다. 물론 돈으로 의지를 사는 게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 비용을 지불했으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자리에서 엉덩이를 뗄 수밖에. 그러나 돈으로 산 의지는 한두 번 통할 일이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우린 모두 경험해봐서 안다. 그래서 의지만 있다면 돈도 들지 않는 '걷기'야 말로 최고의 운동법이라 생각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공모전이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든 또 아니면 일상의 기록이든 열망이 있다면 오늘도 의식의 흐름대로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내 열 손가락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중할수록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꼭 '걷기'를 하기 바란다. 걱정이 있는 사람도 꼭 '걷기'를 하기 바란다. 고칼로리 저녁식사를 한 사람도 꼭 '걷기'를 하기 바란다. 위 세 가지 모두 경험한 나로서도 '걷기'를 시작하면서 숙면을 취하게 됐다. 씻고 나면 스르르 눈이 감긴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쓰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고도의 집중력이 생긴다. 다만 지구력이 약해 긴 시간 동안 집중할 순 없어도 어느새 끝없이 표기된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 덮고 '자야지!' 한다.


처음 며칠 동안은 익숙지 않은 '걷기'에 호흡과 올바른 자세에 신경을 썼다. 더불어 '운동'이라는 것에 너무 매몰되어 내가 걷고 있는 이 하천 길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2주 차가 될 무렵 주변도 돌아볼 수 있게 됐고, 길 위의 사람들도 보게 됐다. 아, 이 곳엔 이런 풍경이 있었구나! 이 사람들은 뭣 때문에 저리 웃을까? 오리가 떠있네! 이 버드나무는 외롭겠어! 은은한 가로등 빛 아래 두 연인 참 잘 어울리네!


어제 늦은 저녁 '걷기'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시계를 보니 벌써 90분이 지났다. 산책을 하면 주위를 둘러볼 순 있어도 달리면 앞만 보게 된다. 천천히, 천천히. 산책을 하듯이 걷기를 하고, 산책을 하듯이 살아야지! 길이 내게 준 깨달음이다.


(c) 슬로우 스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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