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내내 비가 내리는 통에 과연 오늘 저녁엔 밖으로 나가 '걷기'를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분명 봄비인데 봄비치곤 장맛비처럼 길게 내리고, 겨울비처럼 서늘한 기운이 돈다. 그날도 그랬다.
군데군데 하이얗게 습기가 서려있는 창에 몇 자 그려 넣었는데, 언제 낙하했는지 저 밑에서 살랑거리며 매달려 있는 방울들이 쭈욱 쭈욱 미끄러진 자욱만을 남겼다. 순간 뼈마디를 타고 흐르는 전율과 홍역처럼 붉게 돋아나는 소름. 아마도 그것은 곤두박질하는 성적, 우리들의 모순. (c)1997 독백(獨白) 윤근영(Ⅲ)
비는 사람을 사유하게 만든다.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기억을 더듬게 한다. 하릴없는 수험생 시절, 시화전에 내야 할 시를 2분 40여 초 만에 썼다. 쉽게 썼지만 쉽지 않은 사유의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