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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lbro Oct 23. 2024

죽음의 수용소에서 리뷰

시련과 삶의 의미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저



대학 4학년 독서 모임에서 처음 접한 책입니다. 종교적인 색이 있어서 당시에 조금 거북했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습니다. 3년 뒤, 5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도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에 대한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처한 끔찍한 상황을 초월하여,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삶과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고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세: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태도는 나의 선택: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태도는 오직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기대 대신 질문: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기보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삶의 의미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중 하나는 삶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사는 이유가 있거나, 목숨을 바칠 만한 일 혹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의미를 찾았거나, 의미를 찾기 위해 살아갑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빼앗을 수 없는 영혼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입니다. 내게 주어진 상황과 바꿀 수 없는 시련에 책임감을 지면서 의미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책임감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저자는 인생을 두 번째 살고 있는 것처럼 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합니다.




삶과 시련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지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대부분 안락하고 편안한 삶,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꿈을 꿉니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하지 않는 일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생은 내게 주어진 상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그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우스꽝스럽게 벌거벗겨진 몸뚱이 밖에 없었고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글자 그대로 번호가 되었으며 그의 생사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만성 피로와 영양실조, 발진 티푸스와 같은 전염병에 죽어가는 상황이었지만 수용소 삶에 적응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시련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만약 그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삶의 의미를 구했을 것 같습니다.




유머, 비관 속에서의 낙관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지 끊임없이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 실현하면서 행복할 이유를 찾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삶에 대해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머는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상황을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제공합니다. 유머는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이자 요령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도 유머는 빛이 되어줍니다.




성자와 돼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입니다. 저자는 이를 성자와 돼지라고 표현했습니다. 성자는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고, 돼지는 미천한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치 강제 수용소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성자와 돼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하지만 나치 대원이라고 돼지이고 수감자라고 성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수용소라는 나쁜 영향을 받았음에도 수감자들에게 친절을 베푼 감시병이 있었는가 한편, 같은 수감자임에도 나치 대원보다 동료에게 악질적이었던 "카포"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성자와 돼지 모두 잠재되어 있습니다. 성자가 될지, 돼지가 될지는 환경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역설 의도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할수록 다가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을 바라는 어른들, 시험 대박을 간절하게 원하는 많은 학생이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바라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고 매일매일 노력해서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원하기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저자가 정신과 의사로서, 심리 치료사로서 말하는 역설 의도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마음속 두려움이 두려워하는 일을 만들고, 지나친 주의 집중이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에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문제에 웃을 줄 알게 되면 그제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자아실현은 자아 초월, 즉 자기 자신을 잊고 봉사하거나 사랑을 줄수록 부수적인 결과로써만 얻어지고, 성공과 행복을 목표로 삼을 게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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