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다
주인공 싯다르타의 삶은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싯다르타는 상류층의 자제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모두의 사랑과 기대를 받고 자랐습니다. 배움에 갈증을 느껴 많은 공부를 했지만 어떤 지식도 그의 내면의 욕구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안락한 집을 떠나 사문, 수행자의 길을 떠납니다. 고된 수련으로 자아를 버리려고 노력했지만, 잠시 떠나 있을 뿐 결국 본인의 자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지합니다. 그러던 중 깨달음을 얻은 현인 고타마와 만남을 통해 깨달음이란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수행자로서의 생활을 청산합니다.
자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오히려 인간 싯다르타에 대해 더 알기로 결심한 그는 도시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랑하는 여인 카말라를 만나고, 자신과 별개라고 생각했던 '어린애 같은'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부와 권세를 얻고, 과거 자신이 경멸하고 조소했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역겨움을 느낍니다. 결국 사랑하는 카말라, 부와 권세 모두를 뒤로하고 떠나 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하지만 강물의 소리를 듣는 신비한 경험을 한 뒤, 인자한 뱃사공 바주데바 곁에 함께하면서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생활을 합니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카말라와의 아들을 만나고, 아버지로서의 속세의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다시 빠지기도 합니다. 결국 아들을 놓아주면서 소년 시절 자신이 떠나왔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도 그대로인 강물처럼,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싯다르타
자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인물입니다. 경전의 가르침, 사문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속세의 삶을 체험하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는 깨달음이란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음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의 역동적인 삶을 보면서 "우리 또한 싯다르타처럼 모든 것을 다 직접 해봐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타마
깨달음을 얻은 성인으로, 중생들과 구도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들을 도와주려고 가르침을 설파하는 삶을 산 인물입니다. 오히려 싯다르타는 그를 통해 깨달음은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다며 반대의 삶을 사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결국 노년의 싯다르타 또한 고타마와 같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카말라
속세의 삶을 살던 싯다르타가 사랑했고, 싯다르타를 사랑한 인물입니다. 싯다르타를 더욱 세속적으로 변하게 만든 인물이지만, 반대로 그가 추구했던 구도자의 모습을 이해하고 사랑했습니다.
싯다르타가 떠난 뒤 그의 아이를 키우며 살았고, 시간이 흘러 강에서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를 다시 만납니다. 사랑했던 과거의 싯다르타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습니다.
바주데바
사색,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뱃사공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인자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경청하는 인물입니다. 평생 강의 소리를 들으며 살았고, 싯다르타가 강물을 보면서 깨달은 것과 같은 것을 깨달은 한 명의 현인입니다.
싯다르타가 자아로부터의 해방, 자아를 알기 위한 속세의 체험 등 역동적인 삶을 살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었지만, 바주데바는 오직 강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얻었고 싯다르타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꼭 싯다르타처럼 모든 것을 경험해야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고빈다
싯다르타의 친구로서 평생을 구도하는 인물입니다. 어렸을 적 싯다르타와 함께 상류층을 포기하고 사문 생활을 했으며, 고타마의 제자로 들어가 노년까지 수행을 이어가면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은 대부분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싯다르타는 젊은 시절 다양한 가르침과 스승을 찾아 고행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현인 고타마를 직접 만나고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누군가 가르쳐줄 수 없으며, 말이나 사상으로 전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이나 기술은 언어를 통해 전수 가능하지만, 근본적 통찰은 개인의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말을 물가에 데려가도 물을 먹는 것은 말에게 달려있다"는 속담이 이를 잘 표현합니다.
독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독서보다는 글쓰기, 글쓰기보다는 사색을 통해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독서나 가르침은 방향을 제시하고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깨달음은 개인이 스스로 도달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싯다르타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는 개념일 뿐, 실제로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합니다. 나아가 세상은 완전을 향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이미 완성된 상태입니다. 모든 존재는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전체 여정을 품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 동물들, 심지어 돌멩이조차도 영원한 현재 속에서 하나의 세상의 일부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직관은 앤디 위어의 소설 알에서 제시한 ”지나간 과거의 모든 사람과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은 모두 나 자신”이라는 생각과 비슷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원시 세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과 물리학적으로 모든 물질이 빅뱅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이 이러한 세상의 단일성과 연결성을 뒷받침하는 듯 보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듯이, 세상 모든 것이 자신과 하나임을 깨달으면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