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통한 치유
"딩동댕 도오옹~"
45년간 매주 일요일 점심시간 즈음, TV를 켜면 '전국노래자랑'의 시그니쳐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전국 팔도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남녀노소 노래꾼들이 흥을 발산합니다.
노래와 춤만으로는 싱거울까 봐, 전국의 특산물까지 출동하여 오감을 자극합니다.
한참 신나는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눈물샘을 자극하는 참가자가 등장하곤 합니다.
고향에 홀로 계신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당신을 애타게 부르기도 합니다.
야속하게도, 슬픔은 즐거울 때 느닷없이 불쑥 찾아옵니다.
저에게도 슬픔은 그랬고, 그래서 늘 '슬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잊고 싶은 기억과 용서받지 못한 마음이 여전히 제 주변에 머물러 있습니다. 성격이 급하셨던 아버지는 당신의 생각보다 행동이 느린 가족에게 고함을 치셨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성난 미간이 저를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학교나 군대에서도 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아픔에 무력했고,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누군가에게 떠 넘기기도 했습니다.
제 안의 수백, 수천 개의 감정과 마음이 오롯이 제 것이라면,
제 안의 슬픔을 '마주할 용기'도 제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슬픔도 자랑할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제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누군가에 꺼내지 못한 슬픔들을 모조리 자랑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분위기 속에서도, 슬픈 감정과 생각이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특출 난 장기가 없어서 노래자랑에 설 일은 없지만, 제가 가진 슬픔은 마음껏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래자랑은 우열을 가려서 대상에게 더 큰 영광을 선물하지만,
슬픔자랑은 우열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는 대신 끝까지 위로와 눈물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나와 당신'의 슬픔을 마음껏 자랑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와 당신의 슬픔을 넘어 '그들'의 슬픔에도 함께 슬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슬픔은 결국 또 다른 슬픔으로 치유되는 건 아닐까요?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에서,
슬픔이 사람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는지, 그리고 어쩌면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떠나는 사람은 그날이 바로 이별이지만,
남겨진 사람은 받아들이는 날까지 계속 이별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