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무관심
"왜 또..."
"도대체 왜..."
제가 기억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먼저 '나'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간직하거나 잊고 싶은 어제의 나 그리고 흔들리며 버티고 있는 오늘의 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당신'이 존재합니다. 함께하거나 멀어지던 그때의 당신도 있었고, 지금의 일상을 나누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와 당신만으로 자족하던 때 불현듯, 새로운 누군가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저는 늘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거나 알고 싶을 때, '당신과 우리'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어쩌면 '당신과 우리'에 대한 무언가가 곧 저의 이야기이고, 오롯이 저이기도 합니다.
회사를 다니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양육합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겪게 되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주변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나-너-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관심 밖의 저 멀리, 거대한 주변을 이루는 사각지대 그늘 속의 '그들'이 있습니다.
나와 당신과 우리가 아닌 '그들'
'그들'에게 소외와 외로움은 일상입니다. 세상의 관심 밖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들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모든 이야기에 '그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당신과 우리 안에 있던 저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들'이고 무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제 기억 안의 어떤 계절과 시간은 늘 '그들'의 슬픔과 아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찬란하게 생동적인 4월의 봄이 '여전히' 슬프고,
눈부시게 싱그러운 6월의 여름이 '원망스럽게' 아프고,
고요하게 한가로운 10월의 가을이 '애절하게' 아리고,
차분하게 숨고르는 12월의 겨울이 '비참하게' 비통합니다.
"왜 또..."
"도대체 왜..."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그들'이 행복하기보다는 지금보다 '덜 불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에 늘 아파하고 슬퍼하며 브런치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종교와 이념을 떠나서, '나와 당신과 우리'가 아닌 '그들'의 아픔에 가장 많이 아파했던 사람.
이 지구상에 가장 열악하고 낮은 곳으로 가겠다는, '그들'의 슬픔이 오롯이 '나의 슬픔'이었던 사람.
[ 참고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999년 6월 30일, 씨랜드수련원 참사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 참사
그 밖의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아픔들,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숫자로 아픔의 정도를 재단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