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괄식으로 주장 말하기 : 토론 입론 준비
인터넷 기사, SNS 등에 달리는 수많은 댓글을 보다보면 폭력적인 내용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많다. 최근 유명인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악성댓글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019년 10월 14일 전해진 가수 겸 배우 설리의 사망 소식은 사람들에게 악플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금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익명성에 기대어 섣부른 추측이나 편견으로 근거 없는 비판 및 욕설을 쓰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댓글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물론 악플을 최대한 수집하여 그 증거를 바탕으로 악플을 쓴 사람들을 고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악플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과연 인터넷 공간에서 악플이 과연 근절될 수 있을까?
악플을 줄이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에 하루 방문자 수가 30만 명이 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20만 명이 넘는 언론사 사이트에서 인터넷 실명제의 일환으로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다.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인증을 한 후, 콘텐츠를 게시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 제도는 2012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아서 폐지되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를 시행한 이후 불법 게시물이 의미 있게 감소하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최근에는 새롭게 ‘인터넷 준실명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본격적인 인터넷 댓글 실명제가 도입되기 어려워진 만큼, 대신 댓글을 쓸 때 아이디 풀네임과 IP를 공개하여 댓글을 정화하는 제도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댓글을 쓸 때 일련의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댓글 내용에 책임감을 갖게 될 것이므로 사이버 폭력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 인터넷 준실명제는 구체적으로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으로서,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아이디 풀네임과 IP를 표시하게끔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는 포털 사이트 별로 아이디를 공개하는 방침이 다른데, 인터넷 준실명제를 시행하면 포털 사이트가 모두 아이디 공개 정책을 통일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이버 폭력 범죄를 수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준실명제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심한다. 이전에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했을 때에도 악플이 유효하게 감소하지 않았으며, 현재도 많은 사이트에서 실명인증을 진행하고 IP가 공개되는데도 악플이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많은 피해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효성과 더불어 인터넷 준실명제가 초래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크다. 작성자의 정보가 일괄적으로 공개되면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저해할 것이라는 부작용이 제일 많이 거론된다. 이는 국가 권력이나 정치·경제적인 거대 권력에 대한 비판, 내부 고발, 공익 제보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악플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인식 및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찬반양론이 대립하는 인터넷 준실명제에 관한 정책토론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측의 입장을 청중에게 설득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준비 전략은 두괄식으로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장을 먼저 명확하게 제시한 후에 근거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 이유는 청중에게 우리의 주장을 각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토론의 전체 내용을 완벽하게 집중해서 듣고 이해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가장 청중의 집중력이 높은 토론 초반에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가 좋기 마련이다.
인터넷 준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의 긍정측은 인터넷 준실명제가 악플로 인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 사이버 폭력 범죄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 등을 입론 초반에 명시하고 그 주장의 근거와 사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야 한다. 반대로 부정측은 입론을 시작할 때 인터넷 준실명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부작용이 있다는 주장 등을 먼저 말해야 한다.
“토론자가 주장을 밝히지 않은 채 근거나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청중은 그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이것을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결론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때문에 주장과 근거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에는 도중에 더 이상 듣기를 포기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토론, 설득의 기술』, 223쪽
이처럼 미괄식으로 주장을 하게 될 경우 청중을 설득하는 데 비효율적일 수 있다. 청중이 주장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그 주장을 설득하는 근거가 적절한지 판단하면서 토론을 듣기에는 두괄식으로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같이 『토론, 설득의 기술』 책에서 토론을 준비할 때 꼭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적인 전략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