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보는 부동산판례
거액의 근저당권이 설정된 신축건물의 경우, 임대차계약을 원하는 중개의뢰인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계약에 이르게 한 후 중개의뢰인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면 그 손해를 개업공인중개사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
[해당 판례]
서울동부지방법원 2009나 5119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 등
서울동부지방법원 2009가단 10103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 등
[해당 법조문]
공인중개사법 제25조(중개대상물의 확인⋅설명) 및 제30조(손해배상책임의 보장)
이번 이야기는 신축건물의 임차인 모집과 관련된 이야기로, 부동산임대차계약 시 계약을 적극적으로 권유한 개업공인중개사의 중개의뢰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에 관한 내용이다.
“사장님, 제가 형편이 썩 좋지 않은데 여기가 맘에 들어서요. 여기 어디 가성비 좋은 물건 좀 있을까요?”
“어떤 거 찾으세요? 매매요 임대요? 제가 잘 찾아드릴 테니까 말씀만 하세요.”
“제가 사실은 시골에서 상경한지 좀 됐는데도 여유자금이 많이 없어서요. 여태 월세를 살았는데 전세로 옮기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저렴하고 안전한 물건 있을까요?”
“아유~ 잘 오셨습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세보다 좀 싸게 나온 물건이 있는데 새로 지어서 그런지 아주 좋습니다. 금방 나갈 물건인데 한번 보시겠어요?”
“새로 지었는데 싸게 나왔어요? 그거 전세인가요?”
“그럼요. 대출이 조금 있기는 한데 건물가격이 워낙 쌔니까 별 신경 쓰실 일은 아니에요.”
“그래요? 대출이 있다는 게 좀 걸리는데... 근데 그 물건 하자는 없는 거죠?”
“아 그럼요. 아주 좋은 물건이고 주인도 좋고 그래요. 일단 한번 보시면 바로 계약하자는 소리 하실 걸요~”
당사자 및 계약관계
김궁빈은 이 사건의 임차인이며, 개업공인중개사인 이공인의 중개로 김상기 소유의 서울시 광진구 소재 단독주택 및 근린생활시설 중 제4층 2호를 임대차(전세)계약하였다.
김궁빈은 서울 살이의 고단함을 이겨내기 위해 낮이고 밤이고 쉼 없이 일을 했지만 살림은 그리 쉬 피지 못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돈을 조금 모으긴 했지만 전세자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하는 수 없이 보증부 월세로 이사할 집을 찾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개업공인중개사인 이공인의 중개로 김상기 소유인 서울시 광진구 소재 부동산 중 4층 중 2호 세대를 보증금 7천만 원에 기간은 2년으로 하여 임대차(전세)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 7백만 원은 계약 당일에, 잔금 6천3백만 원은 입주일에 각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
“기어이 월세를 벗어났다. 이제부터는 내 소유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지.”
입주일이 되어 김궁빈은 소유주인 김상기에게 잔금을 지급함과 동시에 위 물건 402호를 넘겨받아 그곳에 거주하면서 전입신고를 마침과 동시에 계약서에 확정일자도 받았다.
“입주도 했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도 받았으니 이제 경매가 진행되어도 문제없겠지? 새 집인데 내가 운이 좋은가봐. 호호호호”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입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상기 소유의 신축건물은 근저당권자인 하늘은행의 임의경매 신청으로 경매가 진행되어 결국 제3자에게 낙찰되었다. 그 결과 김궁빈은 예상과 달리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거 어떻게 된 일이지? 부동산에서 경매로 집이 넘어가더라도 내 보증금은 문제없을 거라고 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쟁점사항
- 임차인(전세세입자) 김궁빈의 주장
임차인 김궁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골에서 언니인 김미빈과 함께 상경, 어렵사리 취업한 회사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밤에는 못 다한 학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주말에는 학자금 마련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면서 운을 땐 후 말을 이었다.
박봉에 시달리며 학업까지 병행해야 하는 일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자 매월 지출되는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월세에서 전세나 보증부 월세로 옮기기 위해 집을 알아보던 중 개업공인중개사인 이공인이 운영하는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방문하여 중개를 의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김궁빈이 이공인의 사무소에 방문했을 때 이공인은 임대보증금이 저렴하고 깨끗한 신축건물이라며 김상기 소유의 물건을 소개하였으나 김궁빈 자신은 건물에 대해 26억여 원의 과도한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어 계약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공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건축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건물에 건물시가가 50억 원 정도이고 통상 건축 시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정도의 대출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권유하였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공인은 시가대비 26억여 원의 근저당설정은 그리 과도한 것이 아니며, 혹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전입신고와 함께 확정일자를 받아두면 보증금을 회수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적극 권유하여 자신이 계약 체결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을 시 제시하였던 등기사항전부증명서는 유효사항만을 출력하여 말소되었던 여러 부분에 대한 고지를 하지 않아 비전문가인 자신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상당히 망설였으나 이공인은 그 부분에 대해 무조건 자기 말을 들으면 된다고 종용하였다고 한다.
“사장님 내가 뭐랬어요? 근저당 금액이 너무 많아서 불안하다고 했잖아요. 왜 불안하다는 제게 괜찮다고 계약을 부추겼어요? 그거 정말 너무 하신 것 아니에요?”
- 개업공인중개사 이공인의 주장
이공인은 ‘중개당시 설명한 채권최고액 26억여 원과 7천만 원에 대한 전세권이 설정되어 있음을 확인⋅설명하였고 통상 건축 시 소요되는 건축비용이나 시가 대비 근저당설정부분에 대한 인식 등을 정확히 파악하여 설명하였으며, 김궁빈이 주장하는 임대차 계약일 이후 설정된 근저당권은 소유주인 김상기가 임차인인 김궁빈이나 개업공인중개사인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진행한 일’이라고 한다.
한편, 김궁빈의 주장처럼 통상의 경우보다는 조금 빠른 잔금지급일 약 1개월 후에 입주하는 관계로, 그렇지 않아도 문의전화 등으로 바쁜 중개업 현실상 개업공인중개사인 자신이 급한 사정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잔금지급 시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열람하지 못했을 뿐 고의로 등기내용을 열람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며 항변한다.
“재판장님, 집주인이 세입자는 물론 저한테 까지 말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인데 너무 가혹합니다. 저는 잘못이 없다고요. 나중에 등기내용 다시 확인해 보려고 했었습니다. 믿어주세요.”
법원의 판단
「김궁빈으로서는 개업공인중개사인 이공인이 중개대상목적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하여 손해를 보았음이 명백하다. 이공인은 공인중개사법에서 정한 의무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김궁빈으로 하여금 7천만 원의 임대차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게 한 과실이 있다.」
개업공인중개사인 이공인은 김궁빈에게 이 사건 건물 중 주택인 4층 2호에 대한 임대차(전세)계약을 중개하면서 위 건물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보여주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때까지 위 건물의 등기부에 등재되었다가 말소된 2건의 강제경매개시결정등기와 4건의 압류 및 가압류등기, 16건의 근저당권설정등기 등의 등기사항이 생략되고 당시까지 존속하고 있는 채권최고액 합계 2,639,000,000원인 3건의 근저당권설정등기와 김궁빈이 임차하려고 한 4층 2호에 대한 전세금 7천만 원의 전세권설정등기만이 등재된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제시한 사실은 명백하다.
한편 김궁빈이 위와 같이 다액의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건물에 임차하는 것을 주저하자 이공인은 김궁빈에게 ‘이 사건 건물 전체의 가액이 50억 원이 넘으므로 확정일자만 받아두면 보증금을 회수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계약체결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기에 부동산 비전문가인 김궁빈은 전문직업인인 개업공인중개사인 이공인의 위 말을 믿고 임대인인 김상기와 전세임대차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 사실이 인정된다. 또한 이공인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잔금지급일에 잔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김궁빈에게 이 사건 건물에 대한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제시하는 등의 권리관계 변동여부에 대하여 확인하여 주지 아니한 사실이 인정된다.
결국 위와 같이 계약체결 시에는 이 사건 건물에 대한 그간의 권리관계 변동은 물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하였고, 임대차보증금의 잔금을 지급할 단계에 이르러서는 그 사이에 생길 수도 있는 권리관계의 변동을 제대로 확인시켜 주지도 아니함으로써, 김궁빈으로 하여금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김궁빈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게 되는 손해를 입게 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개업공인중개사 이공인은 김궁빈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통상적으로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의뢰인 즉, 고객에게 물건에 대한 설명을 할 때 과거의 말소사항까지 설명하진 않는다. 물론 꼼꼼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일부 개업공인중개사는 예외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 중 분명한 한 가지는 전문직업인인 개업공인중개사가 거래계약 체결 이후에, 잔금지급 시 거래목적물에 대한 변동사항 유무에 대한 확인 작업이 없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지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 잔금지급 시에 변동사항을 한 번만 더 확인했어도 임차인인 김궁빈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보증금 7천만 원을 보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등기사항증명서는 계약서 작성 시에만 떼어서 확인하는 것이 아니고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