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제는 얼마 낼 건데?"
"나? 이만큼."
탁자 위의 지폐를 전부 아빠에게 밀어놓는 모습이 마치 홍콩영화 속 도박장면 같다. 아직 돈의 가치를 모르는 제제라서 가능한 일일까? 어쨌든 가진 돈 전부를 올인하는 그 순간만큼은 주윤발이나 유덕화보다 늠름했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아내에게 작은 초콜릿이나마 선물하고 싶었다. 대단한 의미가 있는 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애써 폄하할 필요도 없다. 평소에도 늘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우리니까,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초콜릿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마음을 한 데 모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제제에게 의견을 구했다.
선물을 왜 하는 건지 제제는 묻지 않았다. 엄마에게 초콜릿을 사주자는 말에 그저 신이 나서 즐거워할 뿐이다. 선물하는 사람의 기쁨을 이해하는가 싶어 놀라고, 전재산을 희사하겠다는 그 거룩한 씀씀이에 더 놀랐다.
"아빠가 만 원 낼게. 제제는 이천 원만 내."
"응, 좋아."
적정한 선에서 협의를 마무리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동네 편의점이다. 아내의 취향을 고려해서 기획상품보다는 초콜릿과 쿠키 몇 가지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집 남자 둘이 힘을 모아 마련한 선물이니, 거창한 초콜릿 바구니가 아니더라도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받아줄 것 같다.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는 길, 봄내음 섞인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햇살은 우리 주위로 따뜻한 기운을 뿌린다. 제제와 손을 잡고 발을 맞춰가며 그 길을 걸었다.
우리가 모은 돈, 만이천 원. 지폐 세 장으로 무얼 살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 우리의 손에는 어떤 선물이 들려있을까.
행복이 가슴 가득 차올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물감을 잔뜩 찍어 파란 도화지에 붓질을 하면 이와 같을까? 시야 전부를 메우고도 넉넉한 하늘, 그 선명함이 참 고왔다.
"아빠, 앞을 똑바로 보고 걸어야지."
귓가를 선명하게 울리는 제제의 잔소리도 곱게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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