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을 마친 헤어드라이어를 수납함에 넣었다. 수딩젤과 립밤을 충분히 발라준 다음 부드러운 재질의 옷을 입히고 머리칼까지 뽀송뽀송하게 말려줬다. 이제 욕실만 정리하면 제제의 목욕은 끝이다.
사실 목욕을 가장한 물놀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열심히 제제를 돕다 보면, 반바지 하나 말고는 전부 탈의한 상태인데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내뱉는 숨은 자꾸만 뜨거워지기 마련이다..
열기를 식힐 겸, 벌컥이며 냉수 한 컵을 마시고 정리를 위해 욕실로 향하는데 제제가 달려와 와락 안겼다. 아빠의 허리춤에 머리를 마구 비비다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하더니 살포시 입을 연다.
"아빠, 나는 아빠가 정말 좋아."
이런 고백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듣는 것 같다.
기준은 없다. 식사를 하다 말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귓가에 속삭이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품에 안겨 새처럼 지저귄다거나,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데 뒷좌석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할 때도 있다.
"아빠도 제제가 참 좋아."
자세를 낮추고 제제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콩콩 뛰는 심장 소리가 가슴 언저리에서 전해져 온다. 문득 태어나 처음 내 품에 안겼던 제제가 떠올랐다. 그 순간부터 시간을 24배속으로 돌려도 꼬박 1,403시간이 지나야 지금의 제제가 된다. 그 긴 시간 사이로 흐르는 우리의 모습들이 소중해서 깊이, 더 깊이 제제를 품에 안았다.
나에게 넌, 너에게 난,
우린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철학서적의 귀퉁이조차 만져보지 못한 나로서는 도통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저 내가 헤아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태어난 날 내 품에 안겼던 그 작은 생명이 이제는 제대로 안아봄직한 46개월 109cm의 아이가 됐다는 사실과, 앞으로 더 많은 정성을 쏟고 더 큰 사랑을 건네줘야 할 거라는 짐작뿐이다.
"아빠, 욕실 정리하는 거 우리 함께 할까?"
"아차, 아빠가 깜빡했다."
제제가 내미는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콩콩 뛰던 제제의 심장소리가 여운처럼 남아 내 가슴에 맴돌고 있다.
그래, 이제야 알았다.
너는 나를 움직이는 엔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