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괜찮다
생각보다 난해한 봄이다.
어둠과 함께 찾아든 바람은 밤을 꼬박 지나 한낮까지 지루하게도 불어댄다. 미세먼지가 잠잠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바람의 차례고, 바람이 잦아든다 싶으면 그다음이 미세먼지다.
그래도 괜찮다.
바람이 부는 날엔, 제제에게 두터운 옷을 입히고 제제가 마실 따뜻한 우유를 보온병에 담는다. 찬바람 속에서 함께 마시는 우유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별미 중에 별미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날엔, 수십 가지 장난감을 제제 방에서 거실로 옮긴다. 그러면 내 정신연령도 어느새 제제와 같은 다섯 살로 바뀐다. 우리는 같은 다섯 살 친구이기 때문에 집에서 놀아도 충분히 즐겁다.
거친 바람이 코끝을 빨갛게 만들면, 재빨리 귀가해서 욕조 가득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제제와 물장구를 친다. 금세 우리의 이마엔 땀이 흐르고 욕실은 이내 우리의 놀이터가 된다.
기침이 날만큼 공기가 탁하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산책을 멈추고 돌아온다. 공기청정기가 신나게 제 할 일을 하는 동안 어느새 우리의 콧속도 말끔한 상태로 변한다.
내 나이 마흔에 제제가 태어났다.
제제와 함께였던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짜증을 빗겨내는 방법을 터득했고 주어진 현실에 낙담하지 않는 힘도 생겼다. 어지간해서는 감정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됐으며 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어릴 때보다 훨씬 다양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긍정왕이 됐다.
그저 오늘을 즐길 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오전, 장보기를 마치고 마트를 나섰다. 바람이 잠잠하다 싶으니 오늘 미세먼지 수치는 또 '나쁨'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어제까지는 제제와 입을 모아 찬바람을 욕했고 오늘은 미세먼지에 대한 험담을 잔뜩 주고받았으니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