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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6. 2019

# 27. 사랑 독

#2018년 9월의 이야기


제제와 함께 뱀에 대해 공부했어요. 
 
책과 영상 그리고 모형 뱀을 가지고 세세한 설명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로 이사해서 뱀을 직접 만나보는 건 힘든 일이지만 전에 살던 집은 산기슭이라 제제는 아기 능구렁이를 직접 본 적도 있어요. 그때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니 제제는 더욱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에 임합니다. 아들이 즐거워하니 덩달아 마이클도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갔죠.  
 
우리나라에 사는 뱀들을 설명했습니다. 살모사라는 뱀은 독이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데 숲에 함부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질문했어요. 그러자 제제는 대답 대신 마이클의 팔을 무는 시늉을 합니다. 아주 살짝 이가 닿았을 뿐이지만 마이클은 독에 감염이라도 된 듯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떨궜습니다. 
 
"아빠는 독뱀이 물어서 꽥하고 죽었어." 
 
실눈을 뜨고 나지막이 제제에게 말을 건네자 제제는 빙그레 웃으며 마이클의 팔을 붙잡고 호~하고 입김을 불어넣어 줍니다.  
 
"아빠, 그냥 독이 아니라 사랑 독이었어." 
 
뱀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가르치려고 했을 뿐인데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사랑 독이라는 것에 진짜 감염이 됐는지 괜히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제제가 그랬어요?" 
 
"응, 분명히 사랑 독이라고 그랬어요." 
 
제제와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줬습니다. 제니스는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피식 웃습니다. 
 
"혹시 당신, 

제제에게 뭐 사주기로 한 건 아니죠?" 
 
"아, 그러니까 그게..." 
 
"요 녀석이 제 아빠를 녹였네." 
 
마이클은 어제 제제에게, 약속대로 변신 공룡 장난감을 선물했습니다. 여러분도 아기 뱀에게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사랑 독에 손쉽게 감염될 수 있습니다. 치료비(장난감 구입비)도 많이 든답니다. 

쉬쉿!! 아기뱀이에요~ 아빠를 콕! 물었어요.


제제는 태어나서 30개월이 지날 무렵까지 거의 자연 속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매일 산으로, 들로, 밭으로, 개울로 놀러다녔죠. 때가 되면 밤과 도토리를 따러 다니고요.
당시 살던 집은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렇게 뱀과 도마뱀도 볼 수 있었죠. 인근 하천에는 심지어 가마우지도 알을 낳고 새끼를 길렀어요. 참 신기하죠? 멧돼지와 고라니도 봤어요.
마을 구석 닭장에서 달걀도 가져다 먹고, 각종 채소도 밭에서 직접 따서 요리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로 이사했으니 뱀은 볼 수 없죠. 그래서 뱀 모형과 책, 영상을 가지고 제제랑 공부했습니다.
내가 아빠를 콕콕 물었어. 아빠에게 사랑독이 퍼질 거야. 독이 다 퍼지면 이렇게 생긴 장난감을 사줘!!!


저는 사랑독에 감염됐어요. 그래서 제제의 말을 잘 듣게 되었죠. 어차피 계속 살 거니까 그냥 한꺼번에 많이 사줬어요.
아빠, 고마워.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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