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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23. 2019

# 65. 고등어가 바나나 바다에서 헤엄치는 맛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다. 따뜻한 밥을 담아 식탁에 올리고 수저를 드는데,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제가 입을 연다.
 
"아빠, 고등어 구워줘."
 
식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밥 생각이 없다더니 아빠가 식탁을 차리는 모습에 시장기가 발동한 모양이다.  
 
"제제, 아빠 식사하시는 중이야."
 
아내가 만류해 보지만, 어제 구입한 고등어가 냉장고에 있다는 걸 뻔히 기억하고 있는 제제는 요구를 물리지 않는다.
 
"저 고등어 살래요."
 
월요일 저녁, 제제는 마트 수산코너에서 당찬 목소리로 주문을 했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연신 싱글벙글하던 아주머니는 손질한 고등어를 담은 봉지에 덕담도 넉넉하게 얹어주셨다.
 
"고맙습니다."
 
인물 좋다는 소리를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으레 감사 인사를 한 건지는 몰라도 제제의 첫 생선 주문은 시작부터 결말까지 깔끔했다. 자신이 주문하고 받은 것이니 의미가 각별했을까, 제제는 내게 두어 번 더 고등어구이를 청하더니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한 눈치다.
 
"아빠, 다 됐어?"
 
급한 대로 밀가루를 입혀 프라이팬에 굽기로 하고 분주히 움직였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더니 점점 노릇노릇 한 빛을 띠는 고등어를 지켜보다가 다 됐다 싶을 때 도마에 올려 가시를 발랐다.
 
"내가 할 테니 당신 식사부터 해요."
 
아내가 다가왔지만 기왕 손을 댔으니 마무리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고등어 살을 접시에 가지런히 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까지 곁들여 제제에게 내밀었다.
 
"우와~ 아빠 최고!"
 
오랜만에 바나나우유도 마시고 싶다길래 컵에 담아 건네고는 그제야 자리에 앉아 한술 뜨지도 못했던 수저를 들었다. 제제도 열심히 오물거리더니 바나나우유까지 한 모금 마신다. 그 모습이 기꺼워 머리칼을 쓸어주며 많이 먹으라 다정하게 말하니, 제제가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음~ 고등어가 바나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어."
 
44개월짜리 아들의 생각지 못한 표현에, 나와 아내는 배꼽이 빠질 것처럼 한참을 웃었다.
 
조금이라도 귀찮게 여기거나,
잠시라도 미뤘다면,
듣지 못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제, 먹고 싶은 음식이 있거든, 언제든지 아빠에게 말해. 아빠는, 제제가 말만 하면 뭐든지 요리해줄 수 있어."
 
한 발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여주는 아빠이고 싶다.

아빠, 나 갈치 구워줘.


막 식사하려던 참이었어요. 제제는 식사를 먼저 했는데 아빠 엄마가 식사를 하니 다시 시장기가 도는 모양이더라고요.
냉장고에는 전날 사다둔 고등어가 있었어요. 저 고등어 살래요~ 제제가 주문하고 구입한 고등어였죠.
숟가락질 한 번 못 해보고 제제를 위해 고등어를 구웠습니다. 오랜만에 바나나우유도 먹고 싶다길래 함께 주었죠.
고등어가 바나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어~ 제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아빠 최고래요.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네모 반듯이 잘라주면 먹어보고는 부드러운 돌멩이 맛이라고도 해요. 하하하
키가 쑥쑥 크려는지 요즘 식욕이 엄청난 제제예요. 생크림 요구르트는 산타 할아버지 수염 맛이래요.
요구하는 게 엄청 많아요. 아빠에게 특정 음식명을 말하고 요리해달라 하는데 엄청 즐거워요. 안 먹는 것이 문제지, 먹겠다고 해달라는데 최고죠.
전혀 귀찮지 않습니다. 미루지도 않아요.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당장 움직이기라도 해야죠. 아빠는 제제의 전속 요리사거든요.
언제든지, 뭐든지 아빠에게 말해주기만 하면 열심히 요리할게.
너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돼. 아빠랑 신나게 놀고, 재미있게 목욕하고, 맛있게 먹은 다음에 쿨쿨 자면 그게 최고야.
아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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