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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24. 2019

# 66. 저기, 내일 해주면 안 될까?


"제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이야기해 줄래?"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제제의 손발을 닦이고 옷을 갈아입혔다. 먹고픈 음식이 있나 묻자, 제제는 기다렸다는 듯 고객 모드가 되어 입을 연다.
 
"치킨이랑, 오징어가 들어간 것."
 
고객에게서 주문이 들어오면 따로 고민할 것도 없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움직이면 된다. 일본식 닭고기 덮밥인 오야꼬동을 종종 식사메뉴로 내놓곤 하는데 거기에 오징어만 추가하면 얼추 고객이 원하는 방향에 가까울 것 같다.
 
"시간이 조금 필요해. 기다려 줄 수 있지?"
 
"응, 아빠 파이팅!"
 
기다림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요리사의 기 까지 세워주는 고객이다. 이런 고객은 요리사를 춤추게 만드는 법이다. 식재료들 사이에서 도마를 깔고 마치 춤처럼 칼을 놀린다. 칼과 도마가 만나는 소리가 무척이나 흥겹다.  
 
"자, 한 번 먹어 봐."
 
"우와, 정말 맛있어."
 
리액션도 훌륭한 고객이다. 더욱 융숭한 대접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식사를 마치면 달콤한 젤리를 주겠다며 요리사가 서비스를 먼저 제안한다.
 
"좋아, 다 먹고 꼭 양치질할 거야."
 
"그래, 좋은 생각이야."
 
칼 같은 계산법이다. 넉넉한 마음을 건네니 반듯하게 해야 할 일을 읊는다.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 고객의 모습에 자부심이 치솟더니 이내 그 자부심은 쿠키도 구워주겠다는 의지로 탈바꿈한다. 식사를 마친 고객이 소파 쿠션에 기대더니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쉰다. 상의를 살짝 들어 볼록한 자신의 배를 바라보더니 , 그것이 북이라도 되는 양 마구 두드린다. 요리사로서 최고의 영광이다.
 
"아빠, 고마워."
 
"고맙긴 뭘..., "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창가에 섰다. 창밖이 오랜만에 선명한 검은색이다. 몇 개의 별이 더욱 도드라지게 빛을 발하고, 시선을 내리니 수많은 차량이 제 갈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 나는 어떤 하늘, 어느 별 아래를 달려가다가 제제를 만났을까 궁금해진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고 우리는 원래부터 만나기로 약속한 사이일 거라 생각하니 가슴에 아릿한 기쁨이 스친다.
 
"아빠, 쿠키는 언제 줄 거야?"
 
상으로 말랑말랑하던 창밖 풍경이 어느새 단단한 거실 통유리에 갇히고 나도 거실 창에서 튕겨 한 발 물러섰다. 요리사는 이미 퇴근했는데 고객은 내게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제빵사로 변신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이런 진상... 이 아니라 내가 약속한 게 맞다.  
 
"저기, 내일 해주면 안 될까?"
 
"응, 안돼! 지금 해."
 
우리 집엔 요리사 겸 제빵사가 산다. 그에게는 휴무일도, 사대보험도, 급여도 없다. 당연히 연금 따위도 없지. 그런데 그는 희한하게도 항상 즐거운 얼굴이다.




#제제 #45개월 #아빠육아 #육아이야기 
#아빠는요리사 #아빠는제빵사 #고객님의_말씀은_법이다


아빠, 나 치킨이랑 오징어로 만든 음식 먹고 싶어. 아빠는 제제의 전속 요리사입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제제는 아빠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맛보며 자랐습니다.
조금씩 자랄수록 요구하는 것이 다양해져서 참 좋아요. 대견하면서도 기쁩니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요리사는 열심히 움직입니다.
맛있게 먹자~ 잘 먹어주니 요리사는 신나서 묻습니다. 쿠키도 구워줄까?
제제와 제가, 아들과 아빠로 만나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넓은 하늘 아래에서 말이죠.
아빠와 함께 식사하는 걸 즐거워해서 참 다행이에요. 언제나 아빠가 만든 요리가 최고라고 말해주는 44개월 아들입니다.
제제가 잘 먹어주기만 한다면 뭐든 만들어낼 자신이 있어요.
언제나 제제를 위해 맛있게 요리해주는 아빠이고 싶습니다.
아빠가 요리해줬다고 본인도 요리해서 대접하겠다는 제제입니다. 참 마음이 곱죠?
팬더곰, 거미, 타이어, 공룡을 재료로 요리한 걸 먹으라니 기가 찰 노릇이지만 아들의 요리니까 감사히 먹는 시늉을 했습니다.
아빠, 뭐 하고 있어? 쿠키 줘!!! 잊은 줄 알았더니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객님이 원하시니 얼른 쿠키를 구워야 합니다.
응? 사진이 왜 이렇지? 허허허허... 맛만 좋으면 되는 거죠. 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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