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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25. 2019

# 06. 낡은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


"배터리가 다 떨어졌어요.
잠시 후, 낚시 마치고 돌아갈 예정이에요." 
 
11월 말의 어느 날,
낚시를 마무리하기 30분 전에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 낚시를 마치고 돌아갈 예정인데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 직전이니 따로 연락이 없어도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다. 2016년 7월에 구입하고 지금껏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휴대전화는 완충 후에도 조금 만지작거릴라치면 반나절을 채 버티지 못한다. 
 
출발하기 직전 확인한 배터리는 55%. 
어쩔 도리가 없어 그냥 짐을 챙겨 나와 대여섯 시간 물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채 노닐다 보니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는데도 방전 직전이 됐다. 
 
"시간 날 때, 
서비스센터에 가서 배터리 교체해요.
혹시라도 휴대전화 꺼져서 낭패 볼 수 있잖아요."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아내는 걱정스러운 말투다. 교체하라는 말을 넌지시 건네고는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내가 서비스센터에 가는 걸 귀찮게 여기고는 그대로 사용하리란 걸 뻔히 짐작하기 때문이다. 
 
길게 외출할 일이 없는 전업주부니까 
사실 평소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휴대전화로 제제의 모습을 사진 찍다 보면 배터리가 급속도로 소진된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제제와 산책을 하거나 놀러 다닐 경우엔 반드시 미리 충전을 한다. 가끔 충전 케이블에 연결해야 한다는 걸 잊고 잠들었을 때가 문제인데,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러 떠나기 직전에야 충전이 안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자책을 하는 게 전부고, 잠시나마 충전을 해서 다녀오면 되니 딱히 큰일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서비스센터에 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
.

 
12월 초 어느 오후, 
제제가 하원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집안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 앞에 놓인 택배용 상자를 집어 들고 송장을 대충 살펴보니 아내가 주문한 물건이다. 샤워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 포장을 뜯었는데 내용물은 보조배터리다. 
 
응? 이걸 왜 샀지? 
 
궁금증도 잠시, 가만히 떠올리니 지난 며칠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배터리를 교체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아내는 나를 지켜봤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내 결론대로 서비스센터에 가지 않았고, 아내는 며칠을 더 두고 보다가 차선책을 준비한 셈이다. 
 
"당신 휴대전화에 그 보조배터리 끼우면 삼 박 사 
일도 문제없을 거예요. 다음부터 낚시 갈 때, 그걸 꼭 챙겨가도록 해요." 
 
전화를 걸어 장난스레 질문했더니 아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배터리 교체는 왜 하지 않았냐는 타박도 없고, 배터리 교체 안 할 거면 낚시하지 말란 엄포도 없다. 되려 보조배터리를 주문해놓고 용량이 무척 큰 제품이니 낚시하러 갈 때 꼭 가져가라는 말이 전부다. 
 
살아가면서 늘 느낀다.
나는 방전 직전의 낡은 휴대전화고 아내는 대용량 보조배터리다.  
 
나도 아내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다.




11월 말, 잠시 짬을 내서 낚시를 다녀왔어요.


조과를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막 추워지기 시작한 초겨울 짬낚시는 붕어 얼굴 보기 힘들어요.
낚싯대를 드리우고 준비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합니다. 물고기 입질이 없으면 청소도 하고 여유롭게 보내죠.
주변도 한 번 돌아보며 오후를 즐깁니다. 그런데 배터리가 방전 직전이더라고요. 2년 반 정도 된 휴대전화라 배터리를 한 번 교체해야 하는데...
이날은 작은 붕어 세 마리가 전부였지만 나름대로 즐거웠습니다. 배터리 다 됐는데 곧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 메시지를 보내고 낚시를 접었습니다.
낚싯대를 정리하고 또 주변을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배터리는 4% 남아있었어요.
아내는 배터리를 교체하라 했지만 귀찮아서 끝내 교체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보조배터리를 선물로 주더군요. 하하하
이것 하나면 제 휴대전화 가지고 놀면서 다른 전자기기 충전까지 다 가능하니 아주 든든해요. 낚시할 때 가져 가랬으니 일요일에 확 낚시하러 갈까나ㅋ
2015년에도 이렇게 신상품 냄새가 났는데 이제는 제 자신이 방전 직전의 낡은 휴대전화 같아요.
그래도 좋아요. 여전히 신상품 모드인 아내가 마치 강력한 보조배터리처럼 절 지켜주니까요.
초강력 배터리 제제도 있고요.
제니스야, 제제야 우리 맛난 음식 먹고 충전하자~
돼지갈비찜을 얹은 어묵 가락국수입니다. 아내의 표현으론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맛, 제제의 표현으론 아빠는 요리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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