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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26. 2019

# 67. 이제 겨우 44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말문이 트인 이후로
제제는 아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왔다.
 
걸핏하면 왜? 라며 의문을 표하던 걸 지나 특정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하는 일이 빈번해지더니, 이제는 질문 자체가 대단히 예리하고 정교해지는 바람에 허투루 대답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정확하게 돌아올 수 있는 까닭을 묻는다거나, 자동차에 조수석이 두 개면 우리 세 식구가 한 줄로 탈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투덜대며 질문을 하는 식이다.  
 
크레인 위에 바구니를 만들면 크레인으로 들어서 바로 담을 수 있는데 왜 따로 트럭이 바쁘게 움직이는 거냐고 질문했던 날도 있다. 그때는 열 가지가 넘는 크레인 구동 영상을 틀어 보여주고 제제의 중장비 장난감으로 시연까지 해가며 설명했다. 알겠다는 제제의 대답을 들은 건 설명을 시작한 지 35분이 지나서였다.

그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귀찮아하거나 불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나름의 성실함을 담아 진지하게 답변하곤 한다. 어른이 판단하기에 그저 장난일 뿐인 질문이나, 신이 나서 의미 없이 반복하는 물음에도 언제든 마주 앉아 입을 연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용한 내용 몇 가지를 덧붙이거나, 새로운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참 지속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던 아내가 감탄을 하며 곁에 다가와 제제와 함께 내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제법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영상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삼십 대 중반이던 어느 날,
우연히 시청했던 어느 해외 영상에는 등장인물이 셋이었다. 아이는 아무 장애가 없지만 부모는 두 사람 모두, 말을 할 수는 없고 듣는 것만 가능했다. 아이의 앞에 우두커니 앉아 아이의 말을 들어주면서 온갖 표정을 짓고 있는 아빠와, 그런 부자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감동보다 슬픔을 먼저 떠올렸다. 잘 듣고 있다는 걸 아들에게 열심히 알리는 아빠의 그 몸짓은 처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떻게든 아빠에게 설명해주려는 어린 아들의 노력 역시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 만큼 슬펐다. 그들을 보며 눈물을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 나올 때, 나는 자꾸 눈을 비비다가 결국 시선을 돌리고야 말았다.  
 
눈시울이 붉어져 겨우겨우 힐긋거리며 보던 영상이 마무리될 무렵, 부모는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표정을 만들어가며 한 가지 소원이 있다는 걸 수화로 알렸다.


"단 한 번만이라도,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수화의 의미가 한 단어씩 자막으로 영상 밑을 지날 때, 끝내 나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갓 태어난 제제가 내 품에 안겼다. 편안한 느낌인 걸까? 열심히 울던 녀석이 조용하다. 제제를 처음 만나는 날, 꼭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었다. 고개를 숙여 제제의 귓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해."
 
제제가 살짝 움직이며 인상을 쓰더니 이내 평온을 유지한다. 아직 핏기가 전부 가시지도 않은 고작 51cm, 3.36kg에 불과한 갓난아이였지만 어쩐지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을게. 그리고 아빠는 언제나 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거야. 그러니까 아빠한테는 무엇이든지 다 이야기해도 괜찮아."



제제가 무언가를 질문할 때면,

나는 삼십 대 중반에 보았던 영상과, 제제가 태어난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영상을 보며 다짐했던 것들을 가슴에 묻어두었다가 갓 태어난 제제 앞에서 꺼내 들어 약속했다. 이제 평생 지키는 일만 남았다.


약속을 지켜나가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44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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